해외서 느낀 믿음·희망 등 되갚기
교통비 모아 마련한 기부금으로
버스기사에게 간식 전달하고 폐지 줍는 어르신 리어카 도색
3년 간 자전거로 세계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평생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 사랑, 믿음, 희망, 그리고 긍정의 빚이다. 여행을 시작할 때 갖고 있던 200만원은 3년 뒤 한국으로 돌아올 때 그대로 남았다. 받은 사랑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박정규(33)씨는 그 빚을 빛으로 돌려주기로 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선행을 베푸는 ‘오라이 프로젝트’다. ‘괜찮다. 좋다’는 의미의 ‘올 라잇(all right)’을 ‘오라이’로 바꾼 이 프로젝트는 일상에서 쉽게 마주치지만 관심 갖지 않던 주변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과 고마움을 전하는 운동이다.
프로젝트를 위한 기부금은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출퇴근 교통비를 모아 마련했다. 박씨는 경기 일산의 집에서 자전거 공방 매니저로 일하는 서울 영등포의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센터’까지 자전거로 출퇴근을 시작했다.
프로젝트의 첫 대상은 버스운전기사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을 지날 때 그에게 말없이 자신의 도시락을 건낸 버스기사가 떠올라서다. 하루 2,000원 남짓, 6개월쯤 지나 모인 20여만원으로 2013년 여름 50명분의 간식거리를 준비했다. 부인과 센터에서 만난 청년 두 명과 함께 영등포에서 일산으로, 다시 일산에서 영등포로 이동하며 무작정 버스에 올라타 선물을 건넸다.
“당황스러워 하는 분, 의도를 의심하시는 분, 웃으며 받아주는 분 등 정말 반응이 다양했죠. ‘어디에서 나왔냐’고 물으시기에 ‘집에서 나왔다’고 말씀드렸어요.” 묵직했던 가방이 가벼워질수록 가슴은 점점 더 온기로 차 올랐다.
첫 프로젝트 이후에는 폐지 줍는 어르신들의 야간 안전을 위해 리어카 형광도색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면서 산더미 같은 폐지를 싣고 가는 리어카를 종종 봤어요. 100㎏을 모아도 1만원 정도 밖에 못 받으신다는데 늦게까지 일하다 사고를 많이 당한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버스와는 달리 어르신들을 만나기 쉽지 않아서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음 기부금이 모여갈 즈음 마트에서 일하던 가까운 지인이 부당해고되면서 자연스레 시선은 마트 계산원들에게로 향했다.
“지인에게서 일하면서 겪었던 고충들을 익히 들어 감정노동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부당해고 위험에까지 노출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욱 그분들을 생각하게 됐죠.”
20일에는 배달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네 번째 오라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추운 날씨에 오토바이로 거리를 달려야 하는 청소년들을 생각해 목을 따뜻하게 해줄 넥워머와 양말, 영양바를 전달했다.
오라이 프로젝트를 항상 함께 하는 부인 신혜숙(37)씨는 남편의 활동을 반대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좋은 일 하는데 반대할 이유가 있나요?”라고 반문하면서 “항상 남편과 쉽게 할 수 있으면서 의미있는 일에 대한 고민을 해 왔다”며 웃었다.
박씨는 내년부터 오라이 프로젝트를 매달 실시할 계획이다. “매달 하루를 정해 ‘오라이데이’로 만들 생각이에요. 적은 금액으로도 한 달에 한번 누군가가 행복해지면 그 행복이 또 누군가에게 전달되겠죠? 그럼 언젠가는 모두가 행복해 질 날이 올 겁니다.”
김새미나 인턴기자 saemin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