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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타고 전국일주 "수능 스트레스 훌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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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타고 전국일주 "수능 스트레스 훌훌"

입력
2014.12.21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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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180여명 1박3일 여행길

장수 산골서 초중고 보낸 절친들 갑갑한 교실 벗어나 추억 쌓고

세월호에 미안했던 진도 학생은 동해서 떠오르는 해 보며 위안도

여성가족부 나라사랑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
여성가족부 나라사랑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

“수능 치르고 정규수업 끝날 때까지 교실에만 있자니 갑갑했어요. 대학 가면서 뿔뿔이 흩어질 반 친구들과 부산 광안대교의 야경을 보고 싶어요.”

전북 산서고 3학년 최다정(18)양은 19일 서울역을 출발해 충남 장항역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검정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지난달 수능을 본 최양은 전국 곳곳을 구경하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최양과 초중고 12년 동안 한 교실에서 지낸 친구 4명도 기차여행을 함께 했다.

전북 장수군 산서면 산속에 자리한 산서고는 한 학년에 한 반씩만 있는 작은 학교로 전교생은 62명이다. 최양은 “대학에 가면 도서관에서 느긋하게 책을 읽고 싶다”고 했다. 산서면에는 도서관이 없어 임실군 오수면까지 버스 타고 1시간 남짓 나가야 책을 펼 수 있다. PC방과 오락실도 없다. 장항역에서 내려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을 둘러보던 산서고 이민자(18)양은 “우리는 다른 또래처럼 아르바이트할 곳도, 놀 곳도 없다”고 했다. 산서고 학생들은 전주나 광주 등 주변 도시로 나가려면 2~3시간 동안 버스를 두 번 이상 갈아타야 해 동네에 모여 수다 떠는 게 일상이다. 수능 이후에는 교실에 와이파이 공유기를 달고 스마트폰으로 게임 등을 하면서 무료함을 달래왔다.

여성가족부 나라사랑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
여성가족부 나라사랑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

산서고 학생들처럼 수능을 치른 전국의 고3 수험생 180여명이 이날 그들만을 위한 교육전용열차(E-Train)에 몸을 싣고 여행을 떠났다. 여성가족부가 수험생을 대상으로 마련한 ‘대한민국을 타고 떠나는 나라사랑여행’ 프로그램이다. 서울역을 떠나 전라ㆍ경상ㆍ강원도를 돌고, 서울로 돌아오는 1박3일(20일 밤은 야간열차에서 숙박) 코스다. 국립생태원을 시작으로 전주한옥마을, 거제포로수용소, 부산 광안대교 등을 거쳤다. 특히, 강원 영동선의 망상역과 철암-승부-분천역으로 이어진 백두대간 코스의 협곡열차구간은 일반 열차로는 지날 수 없는 곳이다.

열차 안에서 어색하게 통성명을 한 전국 각지의 고3학생들은 출발 반나절 만에 들른 전주한옥마을에선 팔짱 낀 채 군것질을 하고, ‘셀카봉’으로 함께 사진 찍는 사이가 됐다. “사랑합니다”라며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는 인사법이 금세 자연스러워졌다. 이튿날 부산 부전역에서 강원 동해시로 가는 야간열차에선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잠에 빠지기도 했다. 제주외고 강혜원(18)양은 “혼자 꿈꿨던 전국 일주를 또래들과 사귀며 안전하게 다닐 수 있어 즐겁다”고 미소 지었다.

여성가족부 나라사랑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
여성가족부 나라사랑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

세월호 참사의 악몽을 잊으려 여행길에 오른 수험생도 있었다. 전남 진도군 조도에 사는 배승아(18)군은 조도를 떠나 팽목항, 목포, 안양을 거쳐 서울역에 도착해 교육전용열차에 탔다. 배군은 “또래들의 죽음이 교실에서 전해질 때 미안함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며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쓰레기를 줍는 자원봉사를 했다. 배 군은 “동해에 가보는 건 엄두도 못 냈는데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니 기분이 묘하다”고 말했다.

열차 안에서는 진로상담도 이뤄졌다. 수능 등급이 낮게 나와 “이제 꿈이 뭔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은 김모(18)양에게 동행한 서울 강동구상담복지센터의 상담사는 종이에 글을 써가며 불안을 덜도록 했다.

역사교육과 새내기로 대학생활을 앞둔 전남 화순고 정은실(18)양은 여행지를 탐방하며 국사 교사의 꿈을 키웠다. 어머니가 필리핀인으로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정양은 “‘외국인이 한국말 잘한다’는 비아냥을 들을 때도 있었지만 교실에서 당당히 한국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험생들은 21일 오후 서울역으로 돌아와 저마다의 포부를 품고 흩어졌다.

이번 기차여행에 참여하지 못한 수험생들에겐 다른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속리산 법주사 등 사찰 13곳에서 진행되는 템플스테이 등이 내년 1월까지 열리고, ‘명사 100인 릴레이 특강’도 진행된다. 청소년활동정보서비스 사이트(www.youth.go.kr)에 관련 정보가 소개돼 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여성가족부 나라사랑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
여성가족부 나라사랑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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