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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얼기설기] 초연결사회의 번역자

입력
2014.12.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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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문화의 첫 만남

로제타가 갖는 소통의 유산

기대되는 초연결사회로의 꿈

지난 주 복잡계 연구자들에 의해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작 모나리자가 시대별 특성에 따라 재구성됐다. 중세부터 약 1,000년간 서양미술사에 등장한 회화 1만여점을 디지털 형태로 변환시켰다. 그리고 그림 속의 위치에 따른 밝기를 뉴턴의 만유인력과 중력에서 흔히 등장하는 높낮이처럼 표현해 서양미술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중 하나를 예로 들면, 그림 속 물체의 윤곽선은 중세 이후 모호해지는 경향을 보이다가 낭만주의 시대부터 뚜렷해지는 변화가 있다. 이런 특성을 수치화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시대의 특성을 반영해 다양한 모나리자를 만들어냈다.

물론 명암만으로 예술작품의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연구진들은 자연과학에서 다뤄지던 물질세계의 복잡성을 문화유산에서도 찾아내 수치화했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두고 있다. 다른 학문 간의 융합연구에는 해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 연구 역시 연구진들의 의견처럼 문화유산과 자연과학을 연결하는 긴 여정의 작은 첫걸음이라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모든 것이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특히 사용하는 언어조차 완전히 다른 학문 분야 사이에선, 먼저 언어를 번역해 서로 소통하고 연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번역과 소통의 대표적인 유산은 ‘로제타’ 석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제작된 비석인데, 지금은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많은 국가들의 문화재가 겪은 수탈의 과정을 거쳤는데, 로제타 석이 최초로 발견된 때는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이다. 로제타 석에는 동일한 내용의 글이 이집트 상형문자와 이집트 민중문자, 고대 그리스어로 나란히 적혀있다. 이 돌이 발견되기 전까지 이집트 상형문자는 거의 이해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언어였다. 고대 그리스어를 이해하고 있던 인류는 로제타 석의 번역과 연결을 거쳐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석하게 됐다. 그간 수많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만 해석이 불가능했던 인류 초기의 이집트 문명이 오랜 기간 굳게 닫혀 먼지가 수북이 쌓인 철문을 단숨에 열고 우리 곁으로 달려왔다.

세계적인 권위를 갖고 있는 과학학술지인 ‘사이언스’ 지는 올해의 10대 연구 성과 중 ‘로제타’를 1위로 선정했다. 이미 나폴레옹 시대에 발견됐는데 2014년을 빛낸 성과로 선정된 이유는 뭘까? 2004년 유럽에서 쏘아 올려진 우주 탐사선의 이름이 ‘로제타’였기 때문이다. 우주 탐사선 ‘로제타’는 10여년의 비행 끝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혜성에 착륙해 탐사를 시작했다. 혜성은 지구보다 먼저 세상에 태어난 존재다. 특히 태양계가 만들어질 당시의 성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혜성을 통해 우주와 지구, 나아가 생명의 기원과 역사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아왔다. 유럽이 허락없이 들고 온 ‘로제타’ 석이 고대 이집트와 현대를 연결시켜 주었다면, 유럽이 작정하고 쏘아 올린 ‘로제타’ 호는 이집트보다 더 오래 전 역사와 우리를 연결시켜 준다.

이제 연결고리의 역할을 유럽에서 미국 할리우드로 넘겨보자. 지난 겨울 극장가를 강타한 영화가 ‘겨울왕국’이었다면, 올해는 단연 ‘인터스텔라’다. 이 영화에서도 많은 연결이 등장한다. 웜홀을 통해 아주 멀리 떨어진 두 세계를 연결하고, 과거와 현재를 섞어 여러 시간대를 연결해 정보를 전달한다. 이외에도 ‘인터스텔라’는 수식으로 가득 찬 물리 교과서의 난해함을 멋진 화면으로 번역해 전해준다. 이를 통해 물리와 대중이 서로 연결된다. 한동안 물리 전공자가 증가하고, 카페에서 연인끼리 상대성이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과 사물 등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초연결사회가 왔다고 한다. 원래 세상은 인터넷이 없어도 모든 것들이 얼기설기 연결된 초연결사회였다. 다만 연결을 잃어버린지 오래된 탓에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데이터의 수집과 분석, 전달과 소통이 활발해지고 있다. 훌륭한 번역자들이 잃어버린 연결을 복원해 진정한 초연결사회를 만들어 주기를 기대한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ㆍ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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