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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진보 재생의 길

입력
2014.12.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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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로 북한을 추종하는 비애국적 진보에 마침내 조종이 울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진보는 환골탈태하는 재생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을 포함한 좁은 의미의 진보에 대한 지지율은 5%에 불과하다. 한때 20%대의 지지율을 보였던 진보세력은 지금 아주 왜소한 정치세력이 돼버렸다. 1980년대 말 진보세력 내에 민족민주계열과 민중민주계열이 분열된 이후, 민족민주계열 일부가 친북적 경향을 보이고 민중민주계열 일부가 강한 계급적 시각을 보임에 따라 진보세력이 국민들로부터 비애국적 세력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공공연히 종북 언행을 해온 이석기 의원 사건은 진보세력을 비애국적 세력으로 매도당하게 만든 결정적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진보세력은 급격히 위축돼 현재 완전히 주변적 정치세력으로 밀려났다. 이런 진보세력과 분명히 선을 긋지 못한 민주세력의 정치적 위상도 덩달아 크게 위축됐다.

이런 정세에서 진보의 재생을 위한 새로운 진보의 길은 ‘애국적 진보’가 돼야 한다. 새로운 진보로서의 애국적 진보는 대한민국 체제를 인정하고 헌법질서를 존중하는 틀 내에서 평등과 연대와 같은 진보적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하는 진보를 ‘애국적 진보주의’(patriotic progressivism)로 부르고자 한다.

애국적 진보주의는 애국주의와 진보주의가 결합된 것이다. 애국주의는 대외 침략적인 제국주의나 외국인을 배척하는 쇼비니즘과 달리 국민의 순수한 나라 사랑 정서다. 19세기 영국 정치가 액튼 경이 정의했듯 애국주의는 “정치공동체에 대한 구성원의 도덕적 의무의 자각”이다. 평등과 연대를 지향하는 진보주의는 애국주의가 제국주의, 배외주의, 파시즘으로 일탈하는 것을 막아줄 수 있다. 애국주의는 진보가 계급 편향적이고 공동체 분열적인 극단주의로 일탈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기존 진보의 실패에 대한 통렬한 자기 반성에 기초해 새로운 진보는 애국적 진보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독일의 진보적 철학자 하버마스는 민주헌법에 충성하는 ‘헌법적 애국주의’(constitutional patriotism)를 주장한 바 있다. 애국적 진보주의의 애국주의가 헌법적 애국주의에 기초할 경우 배외주의, 파시즘, 민족주의를 배격할 수 있다. 이미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한국사회에서 헌법적 애국주의는 장차 발생할 인종 갈등을 해소해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이념이 될 수 있다.

애국적 진보주의는 오늘날 글로벌화가 초래한 국민경제의 극심한 불안정성과 양극화에 대응해 국민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요청되는 새로운 진보 노선이다. 글로벌화가 파괴한 국민경제의 내생적 발전 경로를 복구하고 경제적ㆍ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며, 글로벌 자본에 의해 도태된 국민적 자본과 지역적 자본을 재생시키고 국가공동체와 지역공동체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 애국적 진보주의다. 글로벌 자본의 활동에 의해 삶이 불안해진 국민과 지역주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려는 것이 애국적 진보주의다.

한국에서 애국적 진보주의는 한국특수적인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북한 추종세력과 분명한 선을 긋고 민주주의와 인도주의 관점에서 북한체제를 비판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성장과 안보에 대한 진보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남한이 주도하는 민주통일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애국적 진보주의는 ‘위대한 대한민국’(Great Korea)과 ‘하나의 대한민국’(One Korea)를 동시에 지향해야 한다. ‘위대한 대한민국’은 지방분권 국가와 통일국가가 실현됐을 때 기대할 수 있다. 이 때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동아시아와 세계적 수준에서 국력을 증대시킬 수 있다. 일본의 군국주의와 중국의 대국굴기(大國?起)에 대응해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하나의 대한민국’은 남북한 간 현격한 경제력 격차를 줄이고 남한내의 계층간, 지역간 격차를 줄일 때 실현될 수 있다. ‘하나의 대한민국’은 통일국가, 분권국가, 복지국가가 될 때 실현될 수 있다.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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