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공동조사 제안 거부 강경대응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일 소니엔터테인먼트픽처스(소니영화사) 해킹을 이유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이 2008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된 뒤 6년 만에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되면 북ㆍ미 관계에 커다란 파장이 예상된다. 미국은 소니영화사 해킹에 대한 북한의 공동조사 제안도 거부하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오전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고 “북한의 소니영화사 해킹사건은 전쟁행위가 아니라 ‘사이버 반달리즘’(사이버 무기를 이용해 문화ㆍ예술 및 공공시설을 파괴하는 행위)”이라고 규정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이후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표명한 것은 처음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 국무부는 앞으로 테러지원국 재지정 요건과 절차, 국내외적 영향 등에 대한 종합 검토 작업의 결과를 금융제재 등 다른 대응 방안과 함께 오바마 대통령에 보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11월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의해 테러지원국에서 제외됐던 북한이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되면 무역과 투자, 원조, 금융거래 등에서 제한을 받게 된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이미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어 실질적 압박보다는 상징적 의미가 더 크다. 현재 미국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나라는 쿠바와 이란, 시리아, 수단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앞서 19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해킹 공격으로 미국이 엄청난 손상을 입었다”며 “북한에 ‘비례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비례적’이란 미국이 입은 손해에 해당하는 만큼 되갚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19일 오바마 대통령의 기자회견 전 “북한 정부가 소니영화사 해킹 행위에 책임이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이 해킹과 관련, 특정 국가의 책임을 공식 지목한 것은 처음이다. 자칭 ‘평화의 수호자’(GOP)라는 해커들은 지난달 말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암살을 다룬 미국 코미디 영화 ‘인터뷰’가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며 제작사인 소니영화사를 해킹했다. 해킹 공격으로 할리우드 명사 4만7,000명의 신상과 미개봉 영화 파일 등이 유출됐고 최근 GOP의 테러 위협으로 ‘인터뷰’의 극장 개봉도 취소됐다.
미국 정부는 중국의 협조를 통해 북한의 사이버 공격 원천봉쇄와 사이버 보복공격, 고강도 금융제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중국에 북한의 사이버 공격 차단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고 20일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이 아직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으나 북한 통신이 중국이 운영하는 통신망을 통해 가동되기 때문에 중국의 협조가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미 법무부가 지난 5월 중국군을 위해 미국 회사로부터 민감한 정보를 빼돌렸다며 5명의 해커를 기소했기 때문에 중국의 협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일 “미국이 터무니없는 여론을 내돌리며 우리를 비방하는 데 대처해 우리는 미국측과 이번 사건에 대한 공동조사를 진행할 것을 주장한다”는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말을 전했다. 이에 백악관은 FBI의 조사 결과를 지지한다면서 공동조사 제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