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척 여인의 모성애 표현한 안 도발
중년 여배우 불안 치밀하게 다룬
줄리앤 무어와 줄리엣 비노시
칸 영화제 초청작 3편서 명연기 펼쳐
예술영화는 50대 여배우가 이끈다. 얼토당토않은 말 같지만 연말 극장가를 보면 그럴싸하게 들릴 것이다. 프랑스의 줄리엣 비노시(50)와 미국의 줄리앤 무어(54) 그리고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캐나다 출신의 안 도발(54)까지 3개국 여배우의 불꽃 튀는 연기가 예술영화 상영관을 장식한다. 세 영화 모두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이고 맹추위를 뚫고서라도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수작들이다.
18일 개봉한 ‘마미’는 제목 그대로 모성에 관한 영화다. 스무 살에 데뷔한 직후부터 칸영화제를 비롯해 세계 유수 국제영화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캐나다 영화계의 앙팡 테리블 자비에 돌란이 연출했다. 다섯 번째 영화로 최연소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기록(25세)을 세운 감독이다. 안 도발은 그가 유독 사랑하는 배우다. 돌란의 영화 다섯 편 중 네 편에 출연했다. 1980년대부터 연기를 시작했지만 최근 들어 뒤늦게 재능을 알리고 있다.
‘마미’는 3인극이다. 엄마를 세상에서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소년 스티브, 아들을 홀로 키우며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여인 디안, 자신의 가족과 잘 소통하지 못하지만 이들 모자와 지내며 새로운 희망을 찾게 되는 이웃집 여자 카일라. 도발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아들을 지켜내는 디안을 풍부한 감성으로 표현한다.
거칠고 불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따뜻한 애정과 유머가 있고 속 깊은 배려와 단호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인물인 디안을 보고 있으면 돌란이 왜 이 여배우를 자주 캐스팅하는지 알 수 있다. 가로 세로 비율이 1대1인 정사각형 영상을 통해 영화 속 인물들의 격렬한 심장박동을 그대로 전하는 이 영화를 보지 않고서 현재의 캐나다 영화를 논하는 건 언어도단일 것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18일 개봉)와 ‘맵 투 더 스타’(25일 개봉)는 중년 여배우의 불안을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영화들이다. 프랑스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에서 줄리엣 비노시는 젊은 여배우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고 동요하는 정상급 여배우 마리아를 연기했다. 극중 마리아는 20년 전 자신을 톱스타로 만들어준 연극의 리메이크에서 과거 자신이 연기했던 주인공 역할을 까마득한 후배에게 물려주고 상대 배역을 맡아야 한다. 작품을 준비하며 마리아는 연극과 현실, 새로 맡은 캐릭터와 과거 연기했던 캐릭터 사이에서 갈등하고 충돌한다.
이 영화는 줄리엣 비노시에 의한, 줄리엣 비노시를 위한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여배우가 느끼는 심적 혼란, 근심 속에서 연극과 현실을 혼동하는 모습, 작품을 준비하고 무대에 오르기까지 겪는 고통스런 과정이 그의 연기를 통해 구체화한다. 최소한의 인물과 공간으로 사건 전개보다 심리 묘사에 치중하는 이 영화는 느린 전개 때문에 꼼꼼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품이지만 그에 상응하는 예술적 체험을 선물하는 빼어난 역작이기도 하다. 15세 이상 관람가.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가 배우 한 명의 불안을 탐구하는 영화라면 ‘맵 투 더 스타’는 할리우드를 요동치게 하는 욕망과 광기를 파고드는 작품이다. 2002년 ‘파 프롬 헤븐’과 ‘디 아워스’ 이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 최근 들어 폭발적인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는 줄리앤 무어가 영화 속 할리우드 인간 군상 중 한 명인 여배우 하바나를 연기했다.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심리를 묘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무어는 이번 영화에서도 자신의 장기를 유감 없이 선보인다. 과거 자신을 학대했던 어머니의 환영과 싸우는 하바나는 특정 배역을 따내기 위해 광기 어린 집착을 보인다. 관객은 하바나의 표정만으로도 할리우드의 중년 여배우가 느끼는 불안과 좌절, 분노와 공포를 읽어낼 수 있다. 미아 와시코브스카, 로버트 패틴슨, 존 큐잭 등 여러 배우들 중에서도 무어의 연기가 유독 눈에 띄는 이유다. 칸영화제는 캐나다의 거장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신작인 이 작품에서 열연한 무어에게 여자배우상을 선사했다. 청소년 관람불가.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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