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후보 4명 전원 野에 패배
일본 내 미군기지 74% 집중
아베, 정치 쟁점화 의도적 회피
미국과도 불협화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조성한 총선 정국의 여파로 잠잠했던 오키나와 기노완시 후텐마 미공군 기지 이전 문제가 정치 쟁점으로 재부상하고 있다. 14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오키나와 소선거구에 출마한 자민당 후보 4명이 모두 야당 후보에 밀려 1위 자리를 준 것은 아베 총리의 밀어붙이기식 기지 이전에 반발하는 주민 정서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자민당 후보 4명은 비례대표로 당선, 모두 구제되기는 했지만 선거전 3개 선거구에서 자민당이 압승을 거둔 전례와 비교하면 주민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후텐마 공군기지 이전을 둘러싸고 아베 정권은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와도 불협화음을 드러내고 있어 상황에 따라 미일 동맹의 근간을 뿌리째 뒤흔드는 골칫거리로 작용할 수도 있다.
최악의 선거결과 원인 제공
오키나와 총선에서 자민당 참패사태를 부른 것은 아베 총리가 후텐마 공군기지를 현내 나고시 헤노코로 강행 이전한 것이 원인이 됐다.
아베 총리는 미일 방위협력 강화 차원에서 미국과 약속한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을 마무리 짓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아베 총리는 2013년 12월 25일 나카이마 히로가즈 오키나와현 지사를 만나 2022년까지 매년 3,000억엔대의 오키나와 진흥기금을 지원하겠다는 당근을 제시했다. 당초 헤노코 매립에 반대하던 나카이마 전 지사는 이틀 후 “오키나와 발전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헤노코 기지 이전을 위한 공유수면 매립을 승인했다.
아베 총리는 1996년 미일 양국 정부가 후텐마 기지를 일본에 반환하기로 합의한 이후 침체일로를 걷던 기지 이전 문제가 한번에 해결될 것으로 판단했다. 미국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고 생각한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방문하는 날로 매립 승인 하루 전인 12월 26일을 잡은 것도 이 같은 자신감이 배경이 됐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후텐마의 현내 이전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지역 주민의 정서를 과소평가했다.
올해 초 치러진 나고시장 선거에서 현내 이전에 반대하는 이나미네 스스무 후보가 당선됐다. 급기야 지난달 치른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에서 후텐마의 헤노코 이전에 반대하는 오나가 다케시 전 나하시장이 매립을 승인한 나카이마 지사를 꺾었고, 나하시 시장에도 이전 반대 후보가 당선됐다. 과거 자민당 오키나와현 연합회 간사장을 역임한 오나가 지사가 당선되면서 아베 정권의 심기는 더욱 불편해졌다.
아베 총리는 정부차원에서 이전을 결정한 만큼, 대세는 결정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이전에 반대하는 지자체장들은 고유권한을 내세워 최대한 공사를 지연시키겠다고 버텼다. 이런 가운데 나카이마 전 지사는 이달 5일 임기를 불과 사흘 앞두고 헤노코 연안 매립공사와 관련, 오키나와 방위국이 제기한 공법 변경 신청 3건 중 2건을 승인했다.
퇴임 직전 대못 박기 차원에서 강행한 무리수에 대한 반발은 거세다. 신임 오나가 지사는 이달 8일 취임하자 마자 나카이마 전 지사가 승인한 관련 문건을 재심사하겠다며 백지화할 의사를 분명히 했다. 14일 총선에서 자민당 후보 4명 전원이 소선거구에서 탈락한 것은 아베 총리의 전횡에 대한 주민들의 엄중한 심판의 결과라는 분석이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 후텐마
후텐마 기지는 1945년 태평양 전쟁 막바지 오키나와를 점령한 미군이 일본 본토 공격 거점 차원에서 현청 소재지 나하시 북쪽 10㎞에 위치한 기노완시에 건설한 공항이다. 길이 3.2㎞, 면적 4.8㎢로 기노완시 전체면적의 25%에 달한다.
후텐마 기지는 미군이 주거지역을 강제로 철거한 빈터에 조성한 것이 화근이 됐다. 미 공군 전투기와 수송기들이 하루에 수백차례 주택가를 가로 질러 이착륙하는 탓에 늘 위험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에서조차 후텐마 기지를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공군 기지로 인식하고 있을 정도다. 후텐마 기지가 건설된 직후인 1947년 미 공문서에 따르면 오키나와 주둔 류큐 미 육군 사령부는 후텐마 기지가 가동되면 인접 육군 기지의 확정 예정지에 “위험하고 불쾌한 소음이 발생한다”며 기지 사용 자제를 요청한 적도 있다.
후텐마 기지를 둘러싼 오키나와 주민들의 불만은 1995년 9월 미군이 초등학교 여학생을 납치,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폭발했다. 이때부터 후텐마 기지 반환을 비롯한 미군 기지 철수를 요구하는 시위가 잇달았다.
결국 미일 양국 정부는 이듬해 협상을 통해 미국이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 주민에게 반환하고, 현내 다른 곳에 기지를 신설하기로 합의했고, 99년 12월 헤노코를 이전부지로 확정했다.
반면 주민들은 오키나와현 내에 새로운 기지 건설에는 반대했다. 오키나와에는 이미 일본내 미군 기지의 74%가 집중돼있어 지역 발전을 저해한다는 이유였다. 주민들의 반대로 후텐마 기지 이전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 가운데 우려하던 사고가 발생했다. 2004년 훈련 중이던 주일 미군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 국제대에 추락한 것이다. 마침 사고 당일 휴일이어서 학생들의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향후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한 주민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하지만 역대 자민당 정권은 미일 동맹 차원에서 현외 이전 불가하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민주당 정권 몰락의 단초
후텐마 기지 문제는 고차 방정식을 푸는 것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어 역대 정권을 괴롭혔다.
2009년 9월 총선에서 자민당 정권을 밀어내고 취임한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걸핏하면 미국에 의존해왔다”며 후텐마 기지 문제를 둘러싸고 주민들이 요구해온 현외 이전을 공식 표명했다가 미국과의 갈등을 자초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이듬 해 5월 “알면 알수록 오키나와의 미군이 억지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감했다”며 헤노코 이전 이외에는 대안이 없음을 시인한 뒤 취임 8개월 만에 사퇴했다.
뒤이어 취임한 간 나오토 총리 역시 대안을 내놓지 못한 상태에서 문제를 질질 끌다가 2011년 6월 미일안전보장협의위원회(2+2)에서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후텐마 기지를 헤노코로 이전한다는 데 합의, 미국에 백기를 들었다. 후텐마 기지를 둘러싼 민주당 출신 총리들의 갈팡질팡 정책이 정권 단명의 단초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베 정권도 골칫거리
아베 총리가 후텐마 기지 이전문제에 적극 나서는 데는 미일 동맹의 강화를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활용하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아베 정권은 2013년 3월 오키나와현에 헤노코 연안부 매립 신청을 하는 한편 4월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을 전제로 2022년도 이후 후텐마 기지 반환을 미국과 합의하는 등 일사천리로 일을 진척시켰다.
지나친 자신감은 화근이 됐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9월 미국과의 합의보다 3년 앞당긴 2019년 2월 후텐마 기지를 반환하겠다고 발표했고 10월에는 이 발표를 각의결정, 미국 정부를 당황케 했다.
미국 정부는 즉각 “공상 같은 전망”이라며 “미국과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 미국을 곤란에 빠뜨렸다”고 반발했다. 미 정부 당국자는 “아베 정권이 11월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공약 차원에서 내뱉은 것”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가운데 일련의 선거에서 모두 아베 정권이 지지한 후보들이 고배의 잔을 마시면서 2019년 2월 이전 약속은 점점 지키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후텐마 기지를 비롯한 미군기지의 오키나와 집중에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 국방부 차관보 출신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특별공로 교수는 최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오키나와에 일본 내 미군기지 70% 이상이 집중된 것에 대해 “고정 기지는 지금도 가치가 있지만 중국 탄도 미사일 능력 향상에 따라 그 취약성을 인식할 필요가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계란을 한 바구니에 넣으면 (모두) 깨질 위험이 커진다”고 비유했다.
나이 교수는 특히 “후텐마 기지를 같은 현의 헤노코로 옮기는 방안도 장기적으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언급,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싼 근본적인 재검토 필요성을 제기했다. 교도통신이 총선 직후 15, 16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 계획을 중단하거나 백지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63.7%를 차지했다.
교도통신은 총선 결과를 비롯한 각종 지표에도 불구, “아베 총리가 미일 합의를 바탕으로 헤노코 이전을 기정 사실화한 채 쟁점화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며 “반대파 지사 등의 탄생으로 이전 관련 절차에 영향을 줄 것은 틀림없다”고 내다봤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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