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범 지음
피어나 발행ㆍ288쪽ㆍ1만4,000원
승승장구하던 벤처 기업가에서 신용불량자로 추락했다. 그리고 작가로, 시민운동가로 다시 태어났다.
이 책은 실패담이다. 게다가 저자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이쯤에서 역경을 딛고 그럼에도 어쩌구 하는 격려를 기대할 만하지만, 그리 뻔한 이야기는 아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2년 넘게 옥고를 치른 이가 기업을 운영하면서 성과만능주의와 소영웅주의에 눈이 멀어 벤처 광풍에 휘둘렸던 잘못을 샅샅이 돌아보며 쓴 반성문이다. 담담하고 솔직하게, 잔인할 만큼 냉정하게, 그런데 유머러스하게 썼다.
저자는 서른 한 살 때인 1994년 아리수미디어라는 교육 콘텐츠 개발업체를 차려 직원 120명 매출 100억원 대의 유망 벤처기업으로 키웠다. 하지만 2006년 파산했다. ‘21세기 신인간기업’ 선언을 하고 주5일 근무제를 선도적으로 도입했던 그가 자신도 모르는 새 악덕 기업주로 전락하고 신용불량자가 된 과정에 우리 사회와 시대가 비친다.
모든 것, 어쩌면 목숨마저 버릴지도 모를 파멸의 길로 가지 않았던 것은 어느 선에서 회사 문을 닫기로 한 결정 덕이었다고 한다. “그 부끄러운 결정을 내리는 데는 흔들리지 않을 용기가 필요했다”며 “운동선수라면 최선을 다하는 게 미덕이겠지만 그것으로도 모자랄 때는 책임을 다해야 후회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인생의 크고 작은 아픔에 힘들어하는 이웃, 특히 청년들에게 한 가닥 용기를 보태주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
처참한 몰락 후 그는 시민운동가로 변신했다. 한글문화연대 대표,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이다. 2010년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은 ‘좌우파사전’의 기획자 겸 공동필자, 민주화운동으로 수감됐을 때의 경험을 돌이킨 ‘내 청춘의 감옥’의 저자이기도 하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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