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지역구 3곳은 내년 보선… 기초의원 31명 무소속 유지 가능성
헌법재판소가 19일 통합진보당에 대한 법무부의 해산청구를 인용함으로써 통진당은 즉각 소속 국회의원 의원직 박탈과 잔여재산의 국고 귀속 등 해산절차를 밟게 됐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헌정 사상 헌재에 의한 정당 해산은 처음인 데다 해산 정당과 소속 의원 처리에 대한 규정이 분명치 않아 향후 유사ㆍ대체정당 창당을 둘러싸고 적잖은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통진당 소속 의원들의 정치 재개도 막을 방법이 없다. 정당 해산 이후 절차에 대한 입법 추진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지만 상당기간 정치ㆍ사회적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 및 지방의원 처리는?
헌재는 이날 법무부의 해산 청구를 인용하면서 통진당 소속 의원 5명(지역구 3명, 비례대표 2명)에 대한 의원직 상실도 결정했다. 이에 따라 김미희(경기 성남 중원) 오병윤(광주 서을) 이상규(서울 관악을) 의원의 지역구에선 내년 4월 29일 보궐선거가 치러질 예정이다. 이들 지역은 지난 19대 총선에서 야권 연대에 따라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측에서 후보를 내지 않아 통진당 후보들이 당선된 지역이다. 비례대표인 이석기 김재연 의원은 의석이 승계되지 않아 국회에서 결원 처리되면서 20대 총선까지 의원정수는 현재 300명에서 298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현행법상 해산정당 의원들의 신분에 대한 규정이 없어 당초 학계에서도 ‘지역구는 의원직 유지 비례대표는 의원직 상실’ 결정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그러나 헌재는 이번 결정에서 민주주의 기본질서에 위배하는 노선을 가진 정당 소속 의원들의 신분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해산 정당을 존속시키는 것과 같다는 판단을 내린 셈이다.
다만 6ㆍ4 지방선거에서 통진당 소속으로 당선된 지방 의원에 대해서는 분명한 기준이 없어 전망이 엇갈린다. 현재 통진당 소속 지방의원은 총 37명으로, 광역의원 3명(비례대표)과 기초의원 34명(지역구 31명, 비례대표 3명)으로 구성돼 있다. 문제는 법무부가 정당해산 결정 심판을 청구할 때 별도로 요청하지 않아 헌재 선고에는 지방의원에 대한 의원직 유지 여부는 포함되지 않았다.
중앙선관위의 설명에 따르면 비례대표는 정당 해산에 직접적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의원직을 상실할 공산이 크다. 선관위 관계자는 “관련법을 검토해 의원직 유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인데 정당 해산과 함께 비례대표는 의원직을 상실하는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초의회 지역구 의원 31명은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문병길 중앙선관위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역구 지방의원 신분은 정당법이나 공직선거법에 규정돼 있지 않아 선관위가 판단할 사안은 아니다”고 했다. 이에 따라 헌재 결정에 포함되지 않은 통진당 소속 지역구 기초의원 31명은 무소속으로 의원직을 유지하게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선 국회의원 신분에 대한 헌재 판결처럼 지방의원도 지역구와 비례대표 구분 없이 동시에 의원직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지방 의회 의원들에 대한 규정 미비를 감안하면 향후 입법 움직임도 가속화할 전망이다. 앞서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헌재가 해산 결정을 내린 정당 소속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의 자격을 상실하도록 규정하는 정당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유사ㆍ대체정당 재창당은 가능한가?
현행 정당법은 헌재 결정으로 정당이 해산된 때에는 ‘해산된 정당의 강령(또는 기본정책)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으로 정당을 창당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이라는 이름도 사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기존 당원들이 당명을 바꾸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앞세운 기존의 강령을 수정해서 재창당 절차에 착수할 경우는 복잡해 진다. 이정희 대표가 이날 “저희 마음 속에 키워온 진보정치의 꿈까지 해산시킬 수는 없다”고 밝혀 통진당 당원들이 당장이라도 전국의 당 조직을 바탕으로 강령과 당명을 새로 만들어 재창당 절차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특히 헌재의 정당해산 결정이 유례가 없어 어디까지를 유사정당으로 규정할지에 대한 명시적인 기준이나 선례를 찾기 어렵다. 당장 ‘진보’라는 명칭만 써도 유사정당으로 볼지, 기존 통진당 소속 당원의 정당활동은 영구히 정지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물론 통진당 소속 당원들이 재창당을 시도할 경우 선관위에서 강령은 물론 당원의 과거 소속을 심사할 수는 있지만 원천적으로 유사 내지는 대체정당을 막을 수단이 없는 셈이다.
때문에 통진당 당원들이 재창당 등 재차 정치세력화할 경우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가 통진당 내 자주파(NL) 활동을 문제 삼았는데 만일 자주파가 아닌 당원들이 창당에 나서고, 법무부가 이를 통진당과 연속성이 있다면서 규제할 경우 정치적 논란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체정당ㆍ유사정당에 대한 정의가 모호한 상황에서 재창당 시도와 함께 법무부의 정당해산 청구가 반복될 경우 사회혼란이 극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정희 대표 등의 정치활동 재개 가능한가?
이정희 대표뿐 아니라 지역구 의원직을 상실한 김미희 오병윤 이상규 의원은 당장 내년 4ㆍ29 보궐선거에 무소속이나 다른 정당 소속으로 출마할 수 있다. 이번 헌재 결정은 공직선거법에 의한 ‘피선거권 제한’에 해당하는 사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이 정당 공천으로 출마할 경우 대체정당 논란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국민의 심판’이란 명분을 내세워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당장은 해산에 필요한 업무 외에는 통진당과 관련한 정당 활동이 일체 금지되기 때문에 이들의 입지 위축은 물론 정치 재개도 당분간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행 집시법에도 헌재 결정에 따라 해산된 정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집회 또는 시위는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병길 선관위 대변인은 “당원들이 종전의 당 조직을 유지하면서 해산된 정당의 명칭으로 계속 활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가칭 ‘통진당 창당준비위’ 등의 명칭으로 헌재 결정에 의해 해산된 통진당의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 당원들이 ‘통진당 비상대책위’를 조직하는 행위도 금지된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통진당은 각종 정당활동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통진당 의원단은 기자회견에서 “헌재가 국회의원 직을 박탈할 권한이 어느 법 어느 조항에 있는지 찾아볼 수 없다”면서 “의원직을 빼앗았지만 진보정치에 대한 열정까지 빼앗을 수 없다. 국민과 함께 진보정치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면밀한 법리 검토를 거쳐 대체ㆍ유사정당에 해당하지 않는 선에서 재창당을 포함한 정당 활동을 이어갈 뜻을 밝힌 것이다.
통진당 해산절차는 어떻게 진행되나?
통진당은 ▦선관위의 정당등록 말소 및 공고 ▦정책연구소 설립허가 취소 ▦잔여재산 국고귀속 조치를 거쳐 완전히 해산된다. 선관위는 이날 헌재 해산 결정 통지서를 받은 직후 통진당에 대한 정당등록을 말소하고 이를 공고했다. 정책연구소(진보정책연구원) 설립허가도 취소했다.
마지막 절차는 정당재산 몰수다. 정당법 제48조는 ‘해산된 정당의 잔여재산은 국고에 귀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선관위는 통진당 잔여재산에 포함된 국고보조금 회수를 위해 국고보조금 수입계좌에 대한 압류를 실시했다. 이어 통진당과 진보정책연구원에 잔여재산 및 보조금 반환에 관한 공문을 송달하고 14일 이내에 회계 보고하도록 조치했다. 일반 잔여재산(현금 및 예금, 의원 후원회, 정당 소유 집기 등 포함)을 회수를 위해 법원에 잔여재산처분금지 가처분 신청도 냈다. 만약 통진당이 잔여재산 납부에 응하지 않을 경우 선관위는 독촉장을 발부하고 관할 세무서장에게 강제 징수를 위탁할 수 있다.
통진당이 2011년 12월 창당한 이후 2012년부터 지급받은 국고보조금과 기탁금은 각각 163억887만원과 14억4,137만원이다. 또 선관위에 따르면 통진당의 재산(올해 6월 기준)은 현재 현금과 예금 18억3,600만원, 비품 2억6,000만원 등과 채무 7억4,600만원 등 총 13억5,965만원 수준이다. 이에 통진당은 해산일로부터 2개월(내년 2월 19일) 이내에 국고에 귀속해야 하는 잔여재산의 상세 내역을 선관위에 보고하고 납부하는 절차를 거친다.
국회 사무처도 국회 본청에 통진당에 지원한 사무실과 의원직을 박탈당한 의원 5명의 의원회관 사무실을 회수한다. 국회 사무실 배정 및 관리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의원직 상실 시 7일 이내에 사무실을 국회 사무처에 반납해야 한다. 이에 국회 사무처는 국회 본청 내 통진당에 제공한 사무실도 7일 이내에 회수할 방침이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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