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훈 지음
알마ㆍ324쪽ㆍ1만 7,500원
거대 기업들의 디지털 헬스케어
인간의 몸까지 데이터화하는 시대
생체정보는 곧 돈으로 환산돼
저자에 따르면 이제 인간은 ‘돈으로 환전되는 숫자’이고, ‘걸어 다니는 현금인출기’이며, 인터넷은 ‘가두리 양식장’ 신세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은 고스란히 포착되어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된다. ‘검색되지 않을 자유’는 거의 불가능해졌다. 정보가 곧 돈이 되는 정보자본주의 시대의 총아, 빅데이터는 ‘인간’의 정의 자체를 바꾸는 빅브라더다. 감시사회의 도래 정도가 아니라 인간의 실존, 존재의 가반 자체가 위협 받는 세상, 이보다 끔찍한 디스토피아가 있을까.
신간 ‘검색되지 않을 자유’는 ‘빅데이터 대박론’을 사정없이 박살 내는 강펀치다. 빅데이터에 포박된 시대에 대해 기술공학뿐 아니라 철학, 사회학, 신경생리학, 문학, 건축, 음악 등 전방위에서 박진감 넘치게 접근해 ‘인문과학적 사유의 진경’(출판사가 쓴 홍보 문구이지만 정확한 표현이다)을 펼쳐 보인다.
빅데이터는 너무 크고 빠르고 복잡해서 기존 방법으로는 분석하거나 처리할 수 없는 정보를 가리킨다. 뒤죽박죽 상태의 서랍을 정리하는 것처럼 출발했던 빅데이터가 지금은 사람의 행동과 생각의 패턴을 읽어내 예측함으로써 인간을 통제하는 기술로 진입하고 있다.
빅데이터가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멀게 느껴진다면, 온라인쇼핑몰이나 인터넷서점, 신용카드회사가 제공하는 이른바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떠올리면 쉽겠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콕 집어서 챙겨주는 그들의 친절이 마케팅 전략이라는 것은 다들 안다. 이 책은 더 깊숙하게 들어간다. 빅데이터 시대가 인간 존재의 근거인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전유해서 재편하는지,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빅데이터 시대, 정보자본주의가 길러낼 인간형을 저자는 ‘호모 익스펙트롤(Homo Expetrol)’이라 부른다. 예측(expect)할 수 있고 통제(control) 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이 신종 인류는 이미 알려진 패턴과 루트를 따라 슬픈 실존을 영위한다. 여기서 벗어나면 무의미한 데이터, 곧 ‘노이즈’로 처리된다. 저자에 따르면 “전세계가 호모 익스펙트롤의 인간농장으로 재부팅되고 있다.“
이를 대표하는 풍경이 생체정보를 빅데이터로 처리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디지털 헬스케어’다. 삼성, 구글, 애플이 모두 이 미래 시장에 올인하고 있다. 만물에 센서를 장착해 데이터화하고 연결하는 사물인터넷과 몸에 걸치는 웨어러블 컴퓨터의 등장은 인간 실존의 최후 마지노선인 몸조차 정보화되어 장악되는 현실을 예고하고 있다.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심장, 위, 폐, 십이지장, 대장, 소장, 소장이 돈을 쓸 수 있게”, “무의식이 소비하고 의식은 그것을 합리화하는” 게 디지털 헬스케어다. 그것은 “양계장(시장)에 새롭게 품종 개량한 닭(소비자)을 채워 넣는 일과 비슷하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전부 디지털 뉴런의 돈다발이 되어버리는 세상에서 신체는 내 것이 아니라 정보자본주의가 발굴한 노다지일 뿐이다. 이 금맥을 따라 권력이 집중되고 삶은 왜곡된다.
‘당신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빅데이터의 오만을 반박하며, 저자는 “인간 실존의 복잡성 앞에서 디지털 문화는 ‘나는 당신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겸허하게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측불가능성, 불투명함, 불확실성이 인간과 삶의 본질이며, 따라서 ‘호모 익스펙트롤’이 아니라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는 괴물’을 ‘영접’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빅데이터를 믿지 않는다. 데이터 사이언스를 부인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회자되는 빅데이터는 ‘의심스러운 유령’이며, ‘눈먼 돈을 탐하는 업자와 정치인들이 늘어놓는 허풍과 거짓말이 7할쯤 섞여’ 있어, ‘차라리 ‘문학비평이 필요한 픽션’이라고 비판한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론’에서 빅데이터는 ‘아파트 공화국’ 한국의 새로운 정경 유착을 은폐하는 ‘기만술’이자 ‘토건족의 은어’라고 성토한다. 창조경제가 강조하는 상상력도 돈벌이용에 불과하다고 꼬집는다. 바로 이 지점이 빅데이터를 정보통신기술 전문가에만 맡겨둘 게 아니라 인문학이 개입해야 할 이유다. ‘속지 않기 위해’ 질문하는 것이 인문학의 역할이다.
결국 저자는 ‘호모 익스페트롤 인간농장’에서 탈출하자고 외친다. 이를 위해 정보자본주의의 핵심 전제 조건을 공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표준화한) 시간 체제와 인터넷이다. 하지만 이것들을 부수려고만 하는 일은 부질없는 싸움이므로, 사람들을 매혹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서 대체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사물의 질서를 비판적으로 상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비트로 계산되는 표준시계가 아닌, 삶과 역사를 보존하는 공동체의 시간 등 대안시간 체계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시론적인 형태로나마 ‘인터넷 바깥의 인터넷’에 대한 구상도 제시한다. 불특정 다수와 상시 연결되는 클라이언트-서버 인터넷이 아닌 소규모 인터넷, 데이터에 시한부 생명을 부여하고 죽음의 블랙홀로 끌어당겨 빅데이터 기술을 원천 봉쇄하는 인터넷이 그것이다. 최근 카카오톡 사찰로 일어난 텔레그램으로의 ‘사이버 망명’도 착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인터넷 접속이 서버를 경유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패킷 감청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빅데이터 시대가 우리에게 무엇인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고민하고 질문한다. 파국이 임박했다고 알리는 묵시록이자 그러니 ‘지금 당장 행동하라’고 촉구하는 격문이기도 하다. 정곡을 찌르는 문제 설정, 보기 드문 필력,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통찰력을 모두 갖춘 ‘특별한’ 책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부터 ‘설국열차’까지 여러 영화를 비롯해 SF소설과 새뮤얼 베케트의 부조리극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문학작품에 사르트르ㆍ들뢰즈ㆍ바타이유 등의 철학까지 적재적소에 인용하며 글을 풀어가는 솜씨가 놀랍다. 이 저자의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 그는 미디어의 역사, 소리의 문화사를 탐구하는 연구자이자 문학평론가, 희곡으로 문학상을 받은 작가, 인문학협동조합 미디어 기획위원장이다. “누군가에게 강렬한 영감을 전하는 사람, 피뢰침과 번개의 역할을 모두 맡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라는데, 과연 피뢰침 같고 번개 같은 책을 썼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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