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에서 또 일이 터졌다. 이번엔 원전 내부도면 유출 사고다. 이번 일이 불거진 건 지난 15일이다. 국내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한 정체불명의 블로그에 월성 1, 2호기 제어프로그램, 월성 1호기 감속재계통 ISO도면 및 배관설치도면 등 6건의 자료가 느닷없이 게재됐다. 자신을 원전에 반대하는 해커라고 밝힌 블로그 개설자는 해킹을 시사했으나, 한수원의 뒤늦은 의뢰로 지난 이틀간 수사를 벌인 검찰은 아직 한수원 전산망이 해킹된 흔적은 찾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해킹이건, 오프라인에서의 유출이건 용납할 수 없는 큰 문제임은 분명하다.
한수원은 지금까지 유출된 것으로 파악된 6건의 도면 및 사진, 문서 등에 대해 “원전 운영에 지장을 줄 수 있는 기밀자료가 아니다”고 해명했다. “제어프로그램 해설서는 운전이나 정비 교육 참고자료로 개념설명 내용이 담겨있으며, 배관설치도 역시 전체 배관상태를 이해하기 어려운 분량”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문서의 기밀등급을 떠나, 유출된 정비교육용 해설서나 일부 배관도는 악용세력의 의지와 능력에 따라 충분히 원전 안보를 위협할 만한 첩보로 가공될 여지가 많다.
한수원의 허술한 보안의식이 드러난 건 처음이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달 공개한 보안실태 감사에선 한빛ㆍ고리 원전 직원 19명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넘긴 사실이 드러났다. 문지기 업무가 귀찮다며 전산망 접근권을 외부인에게 부여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중앙연구원 한 연구원이 지난 2011년 9월 핵발전소 중대사고 대비 관련 용역발주계획을 담은 내부문건을 이메일로 입찰참여 예정업체 등에 제공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다.
이번 사고가 원전 전산망 해킹에 의한 것이라면, 국가안보를 위협할 만한 매우 중대한 문제다. 하지만 당장 심각한 건 불량부품을 쓰거나 내부자료가 유출돼도 타성에 젖어 큰 문제가 아니라는 식의 변명에 급급한 한수원의 자세다. 지난해부터 사고와 비리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문책만이 한수원의 수십 년 적폐를 청산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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