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일자리야, 바보야!” 199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후보가 조지 부시 대통령을 누르고 백악관에 입성하게 된 문구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를 흉내내본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미 유사한 제목의 책도 발간이 되어 있고 언론 칼럼들도 다수 나와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일자리 창출이 경제 살리기의 핵심으로 보는 것에 대다수 의견이 일치하는 듯하다. 최근 만난 김호기 연세대 교수도 “경제를 살리려면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성장을 해야 하는데…”라며 말을 흐렸다. 통상 분배를 강조하는 진보학자가 성장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8일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6차 회의에서 “요즘 우리 청년들이 가장 힘겨워하는 문제가 일자리일 것”이라며 “기성세대들은 경제성장에 따른 혜택으로 일자리 찾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는데 지금은 우리 청년세대가 저성장이 계속되는 이 시대에 살면서 구직에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어 정말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렇다. 일자리가 복지 문제를 해결하고 각종 사회갈등을 줄여나가는 최적의 수단이지만 지금처럼 성장이 더디면 일자리 창출은 요원해진다. 더욱이 경제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점차 험난해지고 있다. 저성장은 물론, 디플레이션 우려, 저유가발 세계경기 침체, 가계부채 증가, 엔화 약세 등으로 각종 악재가 누적되고 있다. 이 악재들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니 경제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세계경제는 저성장 국면이 뚜렷하다. 과거처럼 연 10%씩 고속경제성장을 하는 나라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중국도 경제성장률 목표를 7% 수준으로 하향 조정하면서 ‘중속성장’이라는 목표를 들고 나왔다. 성장속도를 조절하겠다는 뜻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최근 들어‘신상태(新常態ㆍ신창타이)’를 중국 경제의 새로운 화두로 강조하고 있다. 신상태란 그 동안의 고속성장이 끝나고 중고속성장이 새로운 정상(正常)으로 받아들여지는 ‘뉴노멀(New Normal)’시대를 의미한다.
이를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 나오는 패러다임 이론에 빗대어 설명해보면 기존 성장패러다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아노말리(Anomalyㆍ비정상)들이 발생하면서 뉴노멀이 등장한 것이다. 예를 들면, 금리를 인하해도 돈이 돌지 않고 부동산경기는 오히려 후퇴하는 등 기존 이론이 먹혀 들지 않는 것이다. 이런 아노말리가 자주 발생하면 이를 해결할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이 필요하다. 그래서 뉴노멀이 탄생한 것이다.
이병남 LG인화원 원장은 저서 ‘경영은 사람이다’에서 “산업화의 초기 여건은 정보화의 첨단시대를 개척하는 21세기 여건과 판이하다. 이는 생산품목과 유통양식의 변화나 자본과 산업규모를 확장하는 차원이라기보다, 이를 구상하고 제작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의 생활과 소통방식, 무엇보다 감수성과 사유방식이 달라졌다는 점에서 이전 경제학이나 경영학과는 다른 관점, 새로운 사유의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 우리 경제에 대해 “현재 한국의 시장생태계는 다양성의 잠재적 힘을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시장생태계의 특정한 서식지를 차지한 건강한 생명체로서 나머지 생명들과 공생해야 할 기업들이, 이를테면 중공업에서 첨단IT산업, 의식주의 모든 사업 영역을 망라하고, 거기에다 거대한 금융과 유통까지 장악하면서 스스로 시장생태계가 되려고 한다면, 이는 다양성과 공생이라는 생태계 발전의 기본원칙을 무시하는 것으로서 조만간 공멸의 길로 접어들 수 있는, 대단히 난감한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박 대통령은 얼마 전 “남북통일은 인류에 대박”이라고 했다. 인건비 비중이 큰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통일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통일 대박을 터뜨릴 가능성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만큼이나 낮아 보인다. 중국이 말하는 ‘중속성장’조차도 우리에겐 언감생심이다. 따라서 패러다임의 전환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급선무다. 저속성장에 익숙해지도록 경제토대를 다듬는 것이다. 그리고 대기업의 독과점을 막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등 이해관계자들이 조화롭게 공생할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산업구조개편을 서둘러야 한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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