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량권 없는 社 - 퇴로 막은 勞… 정부ㆍ민노총 대리전 양상
勞, “의료법 위반 병원장 고발” 社, “협상테이블 나와야”
지역 거점병원인 경북대병원 파업사태가 18일 파업 22일째를 맞아 노사 양측이 고소ㆍ고발에 나서는 등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임금협상 부문은 일부 진전을 보였지만 핵심인 ‘방만경영 개선’은 협상테이블에 앉지도 못하고 있다.
경북대 병원 측은 지난 3일 노조간부 등 7명을 상대로 무단점거와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에 맞서 노조 측도 18일 조병채 병원장을 의료법위반으로 고발키로 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대구지역지부 경북대병원분회(경북대병원노조)는 18일 오전 대구 중구 삼덕동 본원 로비 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병채 병원장을 의료법위반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노조 측은 “2011년 칠곡분원 개원 후 부족한 칠곡분원 의사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본원 소속 의사가 칠곡분원 소속 의사 명의를 도용해 진료하고 있다”며 “이는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며,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고발 일시에 대해서는 “협의해서 결정하겠다”고 해 여지를 남겨 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같은 날 병원 측도 기자회견을 열고 “파업 장기화로 환자의 진료와 수술에 막대한 차질을 빚고 있다”며 “노조는 방면경영 개선책을 노사협상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파업이 장기화로 삼덕동 본원 병상 가동률은 평소 85~89%에서 52%로 급락하고 외래환자도 하루평균 3,500명에서 3,000명대로 500명 가량 주는 등 파행을 겪고 있다. 올 상반기 삼덕동 본원의 의료부문 적자가 80억 원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파업 때문에 지역민들의 수도권 대형병원 선호현상이 심해지면 경북대병원은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7일 시작된 파업의 핵심은 퇴직금의 60%인 퇴직수당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견상 임금인상과 인력충원, 임상실습병동(제3병원) 건립, 방만경영 개선이지만, 임금과 인력충원은 노사가 상당부분 의견차를 좁혔고 임상실습병동도 핵심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2010년 12월 체결한 단체협약에서 이미 칠곡병원의 임상실습병동 건립문제가 명문화된 만큼 자세한 내용을 몰랐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낮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지역 의료계 관계자는 “경북대병원은 시설비의 상당부분과 연구중심병원 운영, 메디시티 대구 사업, 권역별 응급의료센터 등에 정부지원을 받는 만큼 정부 요구를 거부하기 어렵다”며 “노조 입장에서도 ‘방만경영 개선’으로 인한 손실이 큰 만큼 수용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퇴직수당 문제는 1993년 경북대병원이 경북대 의대 부속병원에서 법인화하면서 잉태됐다. 법인화로 직원 신분이 공무원에서 민간인으로 바뀌었고 각종 대우도 크게 변했다. 특히 공무원연금에서 국민연금으로 전환되면서 보전책 마련이 필요했고, 퇴직금과 별도의 퇴직수당제를 운영해 온 것이 공무원연금 개편과 맞물려 뇌관이 되고 있다. 퇴직수당이 폐지되면 30년 가량 근무자의 경우 1억 원이 훨씬 넘는 금액을 손해 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복지 수준을 국민 정서에 맞게, 공무원 수준으로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부산대병원도 지난달 말 단협에 합의했지만 정부가 퇴직수당 부분을 문제삼고 나섰다. 정부요구를 거부하면 ▦병원장 해임 ▦내년 임금 동결 ▦인규 정원 증원 불발 ▦재정지원 불이익 ▦각종 국책사업 배제 등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지역 의료계 관계자는 “정부가 일정 부분 퇴직수당에 대한 기존 직원의 기득권을 인정하거나 유예하는 등 전향적 자세를 보여야 타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이라며 “이대로 가면 경북대병원 파업은 해를 넘겨 사상 최장기록(34일)도 경신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노조가 문제 삼고 있는 700병상 규모의 임상실습병동 건립문제는 경북대와 경북대병원이 칠곡지역에 의대 간호대 약대 등 의약교육기관과 암병동 노인병동 어린이병원 등 대규모 메디컬센터 조성 차원에서 나왔다. 정부는 칠곡에 이미 570여 병상이 있는 만큼 의료수급 차원에서 삼덕동 본원의 병상 수를 950병상에서 350병상으로 줄일 것을 요구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문제는 대구시와 경북대병원, 계명대 동산의료원 등 유관기관이 나서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했어야 하지만, 병원 측은 공사 계약을 마친 지금까지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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