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던가. KBS가 17일 개최한 2015년 ‘대개편’ 설명회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KBS가 공영방송에 어울리지 않는 성격의 프로그램을 대거 신설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KBS는 이날 힐링, 소통, 지적 호기심을 개편의 키워드로 제시했지만 그 구체적 내용을 보면 시청자가 얼마나 공감할지 의문이 들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신규 프로그램의 면면이다. 내년 1월 1일 시작하는 신규 프로그램 중 상당수는 토크쇼와 토론쇼다. 특히 전문 패널 여럿이 한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토론쇼가 교양과 예능에서 무려 여섯 편이나 신설됐다. 말이 토론쇼지 그 동안 종합편성채널 4사가 수도 없이 보여준 ‘떼토크’ ‘집단 토크’와 비슷하다.
2TV에서 오전6시 방송키로 한 ‘2TV 아침’은 뉴스 형식으로 정보를 알려주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패널 5명이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바뀐다. TV조선의 ‘뉴스쇼 판’이나 채널A의 ‘쾌도난마’가 떠오른다면 지나친 걱정일까. 한국의 과거를 되짚으며 사건과 사고,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여행자 K’는 종편 MBN의 ‘아궁이’와 닮았다. ‘미래예측버라이어티 나비효과’는 진행자 2명에 연예인과 전문가 패널이 각각 5명, 7명 등 무려 14명이 나와 ‘집단 토크’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신규 프로그램 22편 중 이 같은 토론ㆍ토크쇼가 무려 여덟 편, 3분의 1이나 된다.
대신 45년 동안 방송된 ‘명화극장’과 17년 동안 방송된 ‘사랑의 리퀘스트’, 농촌 드라마 ‘산너머 남촌에는 2’는 폐지된다. 그 결과 교양 프로그램의 편성 비율은 올해 12월 현재 61.4%(1TV), 46.2%(2TV)에서 내년 1월 57.8%와 45.3%로 줄어든다.
종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토론ㆍ토크쇼를 공영방송 KBS가 답습하는 현상을 시청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날 설명회에서도 종편을 의식한 편성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오진산 KBS 콘텐츠창의센터장은 “KBS가 종편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1980년대 방송에서 ENG 카메라가 도입된 뒤 모든 프로그램이 KBS에서 시작해 진화했다고 보면 된다”고 펄쩍 뛰었다.
KBS가 굳이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싶다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사대에 단골로 오르는 종편 토론ㆍ토크쇼의 문제점을 먼저 짚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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