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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도] 비소유 세대

입력
2014.12.1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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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이 오래 머물던 조계산 송광사 불일암 가는길에 "무소유 길"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송광사 홈페이지 제공.
법정스님이 오래 머물던 조계산 송광사 불일암 가는길에 "무소유 길"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송광사 홈페이지 제공.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 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요.”

법정스님의 유명한 수필 ‘무소유’는 마하트마 간디의 이 말로 시작한다. 스님은 이 글에서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무소유의 역리(逆理)'를 설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욕은 마치 인간의 본성과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한 것 중 하나가 집에 대한 소유욕이다. 한겨울 추위와 눈비를 피할 수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에 대한 욕망은 선사시대 때부터 우리 세포 속 유전자에 새겨진 근원적인 욕망인지도 모르겠다.

그 때문일까. ‘내 집’에 대한 욕구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 성장을 자극하는 주요 동인 중 하나로 작용해 왔다. 어느 나라 어떤 정부든 국민의 소유욕과 투기욕을 자극하며 건설경기를 활성화하는 것은 경기를 부양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세대가 등장했다. 이들에게는 내 집 마련의 욕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거주할 집은 필요하지만 그게 반드시 내 소유여야 할 필요는 없다는 주의다. 사상 최저 금리인데도 이전 세대처럼 굳이 빚 내서 집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

미국에선 Y세대, 또는 밀레니엄 세대(millenials)라 불리는 20~30대가 여기에 해당한다. 미국 월간지 ‘디 애틀랜틱(The Atlantic)'은 “새 차와 집을 원하는 열망이 2차 대전 후 경제를 이끌어왔다. 그러나 밀레니엄 세대는 둘 다 원치 않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들을 ‘가장 인색한 세대’(cheapest generation)로 명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70%를 넘어 80%에 육박하는데도 집을 사지 않는다. 20대~30대 초반인 후배들에게 “몇 살이 되면 집을 살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물어보면 “집을 왜 사야 하느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처음부터 이 세대가 무소유를 추구했을 리는 없다. 소유를 거부해서가 아니라 소유할 수가 없어서 욕구조차 거세됐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미국 경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대침체에서 서서히 회복돼 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취업이 녹록하지 않다. 총 1조 달러 규모에 이르는 학자금 대출은 청년층의 목돈 마련을 방해한다.

우리나라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청년층이 선호하는 이른바 ‘양질의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고, 저임금 일자리에서 양질의 일자리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는 차단돼 있다. 인턴이 정규직 되는 게 마치 세계대전에서 승리하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심각하게 다뤄지는 드라마가 최고의 인기를 얻을 정도로 살얼음판 같은 취업 시장에서 하루하루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는데, 수억 원이 필요한 내 집 소유는 닿을 수 없는 목표일 뿐이다.

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산업 구조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소유욕이 사라진 세대를 위해 리스 렌탈업이 성행한다. 남는 것은 스마트폰으로 서로서로 ‘공유’한다. 미국에서 대세가 된 카쉐어링 서비스가 국내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년을 넘은 세대에겐 일시적인 유행쯤으로 보이겠지만 공유 경제는 ‘비소유 세대’의 등장에 따른 필연적 현상이다.

“내가 젊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못 살았지만 밤낮없이 일해서 내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 요즘 젊은이들은 눈높이만 높지 꿈도 없고 나약해 빠졌다”는 식으로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경험에서 나온 진실일 수 있지만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지금 집값은 저임금이라도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전세값이 워낙 올라서 돈을 조금 더 보태면 살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이미 전세금 자체에도 대출이 들어가 있어요. 어떻게 더 빚을 져서 집을 사요?”

법정스님은 소유할 수 있었지만 무소유를 선택했다. 지금 젊은이들은 소유할 수 없기에 비소유를 선택한다. 소유 세대와 비소유 세대 사이의 사다리는 이미 치워지고 없다.

최진주 디지털뉴스부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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