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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년만의 화해' 美-쿠바, 핵전쟁 문턱까지 갔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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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년만의 화해' 美-쿠바, 핵전쟁 문턱까지 갔던 사연

입력
2014.12.1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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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쿠바가 1961년 외교가 단절된 후 53년 만에 국교를 정상화했다.

당시 미국의 젊은 대통령 존 F 케네디와 쿠바의 혁명영웅 피델 카스트로는 피그만 침공으로 서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고 이듬해인 62년에는 구 소련의 미사일 기지를 쿠바에 설치하려다 미국과 핵전쟁 문턱까지 갔었다.

53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오바마와 피델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화해의 악수를 나누게 됐다.

1961년 긴박했던 쿠바 피그만 침공사태를 되돌아 본다.

1961년 4월 17일 쿠바 피그만 침공작전에 투입된 망명군들이 해안을 돌진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61년 4월 17일 쿠바 피그만 침공작전에 투입된 망명군들이 해안을 돌진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61년 4월 초, 미국을 움직이는 컨트롤타워가 속속들이 펜타곤에 들어섰다. 취임한지 얼마 안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비롯해 딘 러스크 국무장관, 로버트 맥나라마 국방장관, 맥조지 번디 안보보좌관과 앨런 덜레스 CIA 국장 등이 그 주역이었다. 최고의 두뇌와 각 분야의 전문가였던 이들은 대부분 하버드대학을 졸업했으며 성장 배경도 비슷해 서로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였다.

긴장된 표정이었지만 토론은 길지 않았다. 이윽고 케네디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CIA 안에 대한 승인여부를 결정하겠소. 본 안에 반대하는 사람은 지금 이 자리에서 얘기해 주시오.”침묵이 흘렀다.“그럼 본 안에 대해 모두가 찬성하는 것으로 믿겠소. 나도 찬성이오. 본 계획이 차질 없이 수행되도록 최선을 다해주기 바라오.”

그 누구도 쿠바 피그만 침공을 승인한 이날의 결정이 미국 역사상 가장 쓰라린 패배로 귀결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59년 쿠바에 카스트로 정권이 들어선 후 쿠바 내 미국 재산이 몰수되고 외교 단교까지 이르자 전임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가 수립한 정권 전복작전이 케네디 정부에 의해 승인된 것이다.

작전에 따라 61년 4월 17일 새벽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동남쪽으로 202km 떨어진 피그만에 2400t 급 배 4척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박에는 카스트로 정권에 반대하는 쿠바 망명자 1510명이 중무장한 상태였다. 이들은 카스트로 정권 전복을 위해 미국 CIA가 인근 니카라과에서 훈련을 시킨 ‘2506’여단이었다.

망명군은 공중 지원과 쿠바 반정부 세력의 지원을 받아 수도 아바나로 진격할 예정이었지만 상륙 후 뭔가 크게 잘못돼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계획대로라면 공격 전에 이미 괴멸됐어야 할 쿠바 공군의 폭격으로 작전개시 첫날 이미 배 2척이 침몰했기 때문이다.

상륙여단은 이틀째 2만 여명의 쿠바 군대에 의해 완전히 포위됐다. 2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다음날 나머지 병력들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침공작전 3일만에 전투다운 전투 한번 못해본 채 작전은 완전히 실패로 끝난 것이다.

쿠바 피그만 침공작전에 투입됐다가 쿠바군에 의해 포로로 잡힌 망명군들이 포로수용소에 집결해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쿠바 피그만 침공작전에 투입됐다가 쿠바군에 의해 포로로 잡힌 망명군들이 포로수용소에 집결해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실패에 따른 비난의 화살은 케네디가 뒤집어 썼다. 국제 사회에서 망신당한 것은 물론이고 미국 내의 여론 악화로 대국민 사과 성명까지 발표해야 했다. 이에 반해 카스트로는 영광스런 승리자가 됐고 포로 반환의 대가로 6000만 달러 상당의 식품과 의약품까지 챙기며 지도력을 굳건히 했다. 쿠바는 이 사간을 계기로 사회주의 공화국을 선포하며 소련과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참담한 실패로 끝난 이 작전은 미 행정부가 ‘집단사고(Group think)’에 매몰됐기 때문이다. 집단사고란 친밀한 사람끼리 의견을 모으면 반대 의견이 억제돼 논의가 만장일치로 흘러 쉽게 한 방향으로 결정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펜타곤의 멤버들이 그 부류였다.

피그만 침공의 주역이었던 두 지도자의 운명은 달랐다.

케네디는 63년 11월 46세의 젊은 나이에 오스왈드의 총탄에 쓰러졌고 쿠바의 카스트로는 88세의 나이에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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