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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 '크리스마스 휴전 축구' 미담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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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 '크리스마스 휴전 축구' 미담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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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7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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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전쟁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쟁만큼 중대했다.” 1914년 영국군과 독일군 사이에 있었던 축구경기에 대한 한 장교의 회고다. 제 1차 세계대전 도중 양국 군인이 전쟁을 잠시 멈추고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기 위해 휴전을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당시 휴전했던 양측 군인들은 선물을 교환하고 축구 경기를 했다.

휴전 100년이 지난 지금 이 놀라운 이야기는 여러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만날 수 있다. 영국 슈퍼마켓 체인점 세인스버리는 크리스마스 광고로 이 이야기 소재를 사용했으며 1983년 세계적인 록밴드 비틀즈의 멤버인 폴 매카트니 역시 이를 소재로 한 ‘평화의 담뱃대(Pipes of Peace)’라는 제목의 싱글 앨범을 출시했다. 뮤지컬, 책, 영화, 오페라 등 다양한 분야에 흥미로운 소재로 사용되었다. 가디언은 17일 참호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영국군과 독일군의 축구경기의 실체와 의미를 다시 돌아봤다.

세인스버리의 광고에서는 독일군들이 크리스마스 이브에‘고요한 밤, 거룩한 밤’노래를 부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국군은 상대진영에서 노래를 부르고 불빛을 비추는 것을 본 뒤 노래를 따라 부르며 깡통에 쪽지를 넣어 던졌다. 얼마 후 일부 사람들이 참호를 떠나 반대편에 손을 흔들었고 그들은 가운데서 만났다.

하지만 전 서부전선협회 의장이며 서부전선에서 있었던 짧은 휴전에 대한 책을 쓴 크리스 베이커는 사실 양측의 평화 분위기는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책에서 12월 11일 영국 에섹스 연대의 2대대 군인들이 독일군을 만난 사례를 들었다. 베이커는 “서로에 대한 호기심은 그들의 일상생활에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었다”며 “그들은 항상 서로를 훔쳐봤다.”고 말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들의 참호는 고작 90미터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이야기만 들으면 아주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축구 경기는 전쟁만큼이나 살벌했다. 판정에 대한 시비가 있었다. 베이커는 “전쟁 중 양국 간에 축구 경기를 했다는 것이 마냥 긍정적이고 좋게 보일 수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경기는 독일이 영국에 3대2로 이겼다.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영국의 소설가 로버트 그레이브스는 1962년에 출판한 자서전 ‘모든 것에 안녕을(Goodbye To All)’에서도 영국의 억울한 사정이 적혀있다. “우리는 축구 경기를 하게 되었고 목사와 신부들이 심판을 맡았다. 독일은 우리에게 3대 2로 승리했지만, 사실 신부님이 약간의 자선을 베풀었다. 그들이 넣은 마지막 골은 분명히 오프사이드였는데, 골로 인정되었다.”

1915년 1월초 맨체스터 가디언(영국 언론 가디언의 옛 칭호)도 유사한 보도를 했다. “크리스마스 이후로 집으로 보내는 군인들의 편지가 급증했다. 억울한 패배는 인간 영혼에 대한 자극이었다. 영국군 모두는 절망적이었다.”고 보도했다. 1989년 미국 시트콤 블랙애더 시리즈는 이 축구 경기에서 마지막 골이 오프사이드로 인정되지 않은 것에 대한 내용을 방영하기도 했다.

그래도 전쟁 중인 양국 간에 축구 경기를 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유럽축구연맹(UEFA)과 영국 프리미어, 풋볼리그는 ‘풋볼 리멤버(Football Remembers)’ 주간을 마련했다. 이 주간에 각 리그의 선수들은 경기 후 팀에 상관없이 모여서 사진을 찍는다. 이 사진들은 풋볼 리멤버 홈페이지(http://www.footballremembers.com/)에서 볼 수 있다. 이 사이트에서는 1914년 당시 독일군과 영국군이 찍었던 사진도 볼 수 있다.

유럽축구연맹 회장 미셸 플라티니는 지난주 크리스마스 휴전 당시 축구의 역할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나는 100년 전 군인들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그들은 축구를 함께 함으로써 인류애를 보여줬다. 이는 유럽 통합의 중요한 한 장면이며 젊은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몇 주간 이 크리스마스 휴전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가 열리면서 마치 전쟁보다 휴전이 더 중요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있다. 이에 베이커는 “휴전은 아무 것도 변하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휴전 이후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휴전은 단지 전쟁 중이라도 사람들이 이렇게 행동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김지수 인턴기자(숙명여대 미디어학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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