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투자자문회사를 차린 뒤 채용한 직원들과 투자자들로부터 거액을 뜯어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피해자 대다수는 빚 독촉에 생활고를 겪고 있는 20대 여성들로 드러났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투자금 명목으로 8억7,000여만원을 뜯어낸 혐의(사기)로 백모(32)씨와 박모(50)씨를 구속하고 배모(27ㆍ여)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17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백씨 등은 지난해 4월 중순부터 올해 9월까지 ‘JMM에셋’‘한우리프라임’등 이름의 유령회사 다섯 곳을 차리고 온라인 구직사이트에서 20대 여성 4명을 직원으로 채용했다. 백씨는 직원들과 모집한 투자자 21명에게 자신을 ‘금융자문 투자설계 분야 재무이사’라고 소개하며 “좋은 투자처가 있으니 대출을 받아 돈을 맡기면 이익금을 돌려주겠다”고 유혹했다.
백씨는 또 “만약 이미 대출이 있다면 ‘통대환 대출’을 통해 채무를 대신 갚아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통대환 대출은 채무자가 제2ㆍ3금융권에서 받은 고금리 대출을 사채업자가 대신 갚아 신용등급을 올린 다음, 채무자가 제1금융권의 낮은 금리로 더 많은 돈을 대출받아 사채업자에게 원금과 수수료 등을 되갚는 방식이다. 하지만 통대환 대출 과정에서 고액의 수수료를 떼고 대출금과 중개 수수료를 가로채는 사기도 잦아 금융감독원은 지난 4월 불법 통대환 대출에 대한 소비자 경보를 발령했다.
백씨 등은 이러한 수법으로 수도권과 경북 지역에서 피해자들을 만나 1인당 1,100만~1억7,000만원을 가로챘다. 조사결과 피해자 대다수는 학자금이나 생활비 등으로 빚에 쫓기던 20대 여성들이었다. 백씨는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 어려움이 있는 피해자들의 사정을 악용해 투자를 설득했다. 백씨 등은 투자 초기 몇 달간은 일정 금액을 지급하며 피해자를 안심시켰다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는 수법을 반복했다. 심지어 이들은 “피해금을 돌려줄 테니 통장과 명의를 달라”고 요구해 피해자 명의로 유령회사를 차린 뒤 2~3개월마다 사무실을 옮기며 수사망을 피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한편 공범인 박씨는 2005년 경북 안동에 있는 농협 지소장으로 근무하다 ‘청와대 비자금 세탁팀 사칭 사기’에 가담, 허위 전표를 통해 농협 전체 보유금 66조원을 차명계좌로 불법 이체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1년간 실형을 산 전력이 있다. 박씨는 이후에도 주식투자 사기 등으로 수 차례 징역을 살았고 2010년 백씨를 서울구치소에서 우연히 만나 범행을 계획했다. 또 다른 피의자 배씨는 2009년 백씨에게 5,000만원을 사기 당한 피해자였으나 이들을 신고하는 대신 ‘피해금을 돌려받기 위해 다른 피해자를 모집하자’는 말에 꾀여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20대가 겪고 있는 생활고를 악용한 유사 범죄를 막기 위해 금융감독원과 협의해 비슷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홍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추가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피의자들의 계좌추적 등을 통한 여죄 수사도 계속할 예정이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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