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뮤지컬 극장에서 성소수자를 소재로 한 작품을 접하는 건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올해 ‘킹키부츠’와 ‘프리실라’가 한국무대에서 초연했고 2012년 한국에 처음 소개된 ‘라카지’는 초연의 인기를 바탕으로 얼마 전 재연에 들어갔다. 이 외에도 ‘헤드윅’ ‘쓰릴미’ 등이 꾸준한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최근 몇 년간 한국 뮤지컬계에 모습을 드러낸 퀴어(queer) 코드는 사실 뮤지컬의 본고장인 영미권에서 오래 전부터 인기를 끌었던 소재다. 1994년 소규모 바에서 시작한 ‘헤드윅’은 1998년 뉴욕 웨스트빌리지 호텔로 무대를 옮겼고 ‘라카지’ 역시 1983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30년간 꾸준히 인기를 모았다. 이들 작품의 성공을 바탕으로 2000년대 초반 영미권에서는 퀴어코드를 전면에 내세운 뮤지컬이 붐을 이루기도 했다.
해외에서 다양한 퀴어 뮤지컬이 탄생한 일차적인 이유는 업계 종사자들 중 상당수가 성소수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작곡가 레너브 번스타인은 “뮤지컬 작곡가로 성공하려면 유대인이거나 동성애자여야 하는데 나는 둘 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성소수자 예술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에 솔직하게 녹인 덕분에 퀴어 뮤지컬의 수가 늘고 질이 높아졌다.
하지만 업계에 성소수자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이처럼 오랜 시간 퀴어 뮤지컬의 인기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가 퀴어 뮤지컬의 롱런 비결이다. 꼭 뮤지컬 무대가 아니더라도 해외 대중문화 콘텐츠 속에는 성소수자를 반감의 대상이 아닌 긍정의 아이콘으로 묘사한 경우가 많다.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 ‘윌 앤드 그레이스’ 등에서도 성소수자 캐릭터는 쾌활하고 사랑스럽다. 이들 캐릭터에는 사회의 시선이 반영돼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최근 몇 년간 한국 뮤지컬 시장에 퀴어 소재 작품이 늘어난 것은 고무적이다. 성소수자를 ‘경멸’에 가까운 눈으로 바라봤던 사회 시선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프리실라’ 개막 전 동성애를 비난하는 네티즌 글에 조권이 직접 나서 반박글을 달았고 ‘라카지’ 또한 동성애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가족애, 모성애를 부각시켰다.
문화의 생명력, 나아가 사회의 생명력은 다양성을 인정할 때 유지된다. 일부 개신교 단체의 동성애 반대 시위와 그로 인한 서울시민인권헌장 폐기 등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지 못하는 시대착오적 시선이 뮤지컬 무대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생명력까지 갉아먹고 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킹키부츠’의 대사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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