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가장 하기 힘든 일은 ‘허니버터칩’을 먹으면서 ‘아이맥스’로 ‘인터스텔라’를 보는 것”
허니버터칩도 인터스텔라 아이맥스 관람권도 하늘의 별따기이다 보니 우스개 소린데도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매진사태에 암표상까지 등장했던 인터스텔라 아이맥스 열풍은 상영 종료와 함께 막을 내렸지만 허니버터칩은 여전히 ‘돈 주고도 못 사는’희귀 아이템이다. 한 달째 편의점을 기웃거리고도 맛 한번 못 본 소비자들에게는 그저‘상상 속의 과자’일 뿐이다. 이 지독한 품귀현상을 이끌고 있는 힘은 특출난 맛 보다는 호기심과 과시욕일 가능성이 크다. “맛도 궁금하지만 솔직히 허니버터칩을 먹는 모습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싶어서요”대학생 심 모(23)씨가 밝힌 구입 희망 이유다. 여기에‘남들 다 하니까 나도’식의 심리가 더해지면서 허니버터칩의 인기는 유행을 넘어 광풍 수준으로 몰아치고 있다.
최근 땅콩 리턴 사건 직후 난데 없는 마카다미아의 인기가 치솟듯, 유행은 밑도 끝도 이유도 없이 시작되곤 한다. 그리고는 마치 전염병처럼 한 시대를 통째로 휩쓴다. 짧은 유행이 지나간 자리에 여운으로 길게 남아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되기도 한다. 유행의 속성이 그렇다. 줏대 없이 남을 따라 가는 것 역시 유행의 여러 모습 중 하나지만 그게 전부일 경우 열풍은 오래 가지 않는다. 올 한 해를 관통한 수 많은 유행의 키워드 중 유달리 유통기한이 짧았던 몇 가지를 꼽아봤다.
‘질소를 샀더니 과자를 덤으로 주더라’
과대포장 문제를 지적한 국산과자 불매 운동은 역설적이게도 국산과자에 의해 잠잠해졌다. 9월 28일 몇몇 대학생이 질소과자 뗏목을 타고 한강을 건너면서 불매 운동에 대한 관심은 절정에 달했다. 허니버터칩은 SNS의‘편의점 알바생 추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인기 몰이를 시작했다. 그 후 국산과자에 대한 불신이 허니버터칩 구매 행렬로 바뀌는 데는 채 한 달도 안 걸렸다. 뚜렷한 이유와 구체적 목적을 지닌 소비자 운동마저도 흔하게 지나는 유행처럼 또 다른 유행 앞에서 힘 없이 관심을 잃어갔다.
냄비처럼 순식간에 뜨거워진 관심과 인기가 한 순간 식어버리는 현상은 IT 분야에서도 볼 수 있었다. 9월 카카오톡 감청 논란이 불거지자 외국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으로 갈아타려는 사이버 망명이 본격화 됐다. 순식간에 170만 명을 넘어서는가 싶던 텔레그램 이용자 수는 불과 2, 3주 만에 줄어들기 시작했다. 16일 현재 텔레그램은 애플 앱스토어 무료 앱 인기순위 150위 내도 들지 못하는 수준으로 추락했다. 국내 현실에 맞는 서비스 부족 때문인지 대세를 무조건 따르는 심리가 거품처럼 걷힌 까닭인지 원인은 분명하지 않지만 텔레그램은 어느새 잊혀진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올 여름 SNS를 가장 ‘핫’하게 달군 이슈는 아이스버킷챌린지였다. 얼음물을 뒤집어 쓰고 다음 기부자를 지목하는 루게릭병 환자 돕기 기부 릴레이로 미국에서 시작된 이벤트는 우리나라에서도 유명인사는 물론 일반인들까지 적극 참여하면서 루게릭병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는데 힘을 보탰다. 그러나 아이스버킷챌린지가 한창 유행이던 7월, 당시 루게릭 투병 중인 박승일 전 코치가 프로농구연맹(KBL)의 명예직원직에서 일방적으로 정리해고 당했다는 사실이 최근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거셌다. 뚜렷한 종료 시점이 정해지지 않았던 아이스버킷챌린지는 어쨌든 이번 일로 확실히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벤트는 유행을 따르지만 본래 취지만은 유통기한이 없기를 바랬던 루게릭병 환우와 가족의 마음에 얼음물을 끼얹은 채로.
세월호 참사 직후 정치인과 공무원들의 가슴엔 노란 리본이 빠짐 없이 자리 잡았다. 물론, 한 순간의 유행이나 과시욕으로 시작된 리본 달기는 분명 아니었다. 8개월 여 지난 지금 얼마나 많은 노란 리본이 가슴에서 자취를 감췄을까? 슬픈 한 해를 관통했던 리본을 돌아보니 유통기한 없는 유행도 하나쯤은 간직해야할것 같다. .
사진부 기획팀 =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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