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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그 뜨거움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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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그 뜨거움을 기억하라

입력
2014.12.1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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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작가의 '타페이스멘터' 등

1986년과 1988년 사이 이뤄진

미술전시 여섯 장소 그대로 재현

한국 다원주의 미술의 기원 탐색

서울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에 전시된 이상현 작가의 1988년 작 '잊혀진 전사의 여행-안드로메다에서 운명의 여신과의 만남'.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에 있던 작품을 그대로 재전시했기 때문에 작품은 낡았어도 당시 미술의 실험적 시도를 엿볼 수 있다. 소마미술관 제공
서울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에 전시된 이상현 작가의 1988년 작 '잊혀진 전사의 여행-안드로메다에서 운명의 여신과의 만남'.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에 있던 작품을 그대로 재전시했기 때문에 작품은 낡았어도 당시 미술의 실험적 시도를 엿볼 수 있다. 소마미술관 제공

1988년 서울 동숭동 토탈갤러리(지금의 토탈미술관)에 놓였던 우주비행선 ‘타페이스멘터(시공간이동호)’는 낡고 녹슬었다. 전시 초반 비행선의 꼬리 날개가 떨어져 나가 급히 보강공사를 하기도 했다. 영어 단어 타임(시간), 스페이스(공간), 무브먼트(이동)를 투박하게 섞어 붙인 이름도 지금은 어색하기만 하다. 그러나 타페이스멘터를 이용한 이상현 작가의 퍼포먼스 ‘잊혀진 전사의 여행-안드로메다에서 운명의 여신과의 만남’은 오늘날의 SF 영화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앞서간 상상력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영상으로 소개되는 퍼포먼스에서 이상현 작가는 자신의 몸을 타페이스멘터에 묶은 채 안드로메다 여신과의 이뤄질 수 없는 만남을 기대하며 우주를 떠도는 모습을 연출했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에서 ‘레트로 86-88’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1986년에서 1988년 사이 미술전시가 이뤄진 여섯 장소를 재현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전시를 기획한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1980년대 한국 미술을 서성록 평론가가 '다원주의'라는 단어로 설명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느낌이 있다”며 “이대로 1980년대가 잊혀지기 전에 그 의미를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당시의 전시를 그대로 가져왔다”고 말했다.

전시를 통해 소개된 장소는 이상현의 작품처럼 실험적인 전시를 선보인 토탈미술관을 비롯해 민중미술 전시공간인 그림마당 민, 한국화 전시공간 동산방화랑, 신진 작가들을 소개한 관훈미술관과 서울미술관,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올림픽조각공원이다. 198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초거대 비디오아트 구조물 ‘다다익선’을 설치한 백남준의 당시 문서자료도 전시됐다.

그림마당 민은 민족미술협의회 산하 공간으로 1986년부터 1994년까지 운영됐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작가들의 전시가 진행된 공간이다. 이번 전시에는 그림마당 민에서 진행된 ‘여성과 현실전’ 등 여성주의 미술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이 등장했다. 윤석남과 김인순 등의 작품은 민중미술의 기법을 빌려 탄생한 여성주의 미술의 초창기 모습을 보여준다.

관훈미술관(지금의 관훈갤러리)의 ‘로고스와 파토스’ 전은 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작가 그룹 ‘로고스와 파토스’는 서양에서 유행하던 추상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한국의 근대화 이후 형성된 모더니즘”을 표현하려 한 작가들의 모임이었다. 이들의 작품을 통해 최근 재조명되는 단색화의 뒤를 잇는 추상미술이 민중미술과는 별도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81년부터 2001년까지 운영된 서울미술관은 두 흐름의 중간에 위치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86 문제작가전’은 평론가 7인이 한 명씩 추천한 작가들의 공동 전시로 진행됐다. 민통선 부근 농촌을 묘사한 송창의 ‘분단의 논’처럼 내용 자체는 현실참여적이나 표현형식에 대한 관심도 놓치지 않은 작품들이다. 민속놀이를 그린 유휴열의 ‘생ㆍ놀이-만다라’는 평면회화의 형식을 벗어나 입체평면을 도입한 미적 시도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1980년대 후반 이뤄진 미술전시들은 1987년 민중항쟁을 전후해 대중과 가까워졌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해 세계 미술과 만났다. 양정무 교수는 이 시기를 “모두들 뜨겁게 달아오른 시기”라고 표현하며 “같은 다원주의라 하더라도 차가운 오늘날의 한국 미술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 전시는 단순히 1980년대를 재현하는 전시가 아니라 새로운 ‘열정의 시대’가 더 빨리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전시는 내년 1월 11일까지 이어진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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