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미술 재능기부로 작품 제작, 모금 활동 펼쳐 단번에 목표액 달성
대학·고교생 회원 100여명 활동 "내달 모의 재판 많은 성원 부탁"

16일 서울 성균관대 세미나실에서는 성폭력 예방을 위한 대학생-고교생 연합 동아리 ‘집에 가는 길’ 임원진들의 회의가 한창이었다. 최근 추진한 프로젝트 ‘승화(昇華)’의 성과를 돌아보고 내달 계획중인 ‘성폭력 모의 재판’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승화’는 지난해 8월부터 시작한 성폭력 피해 예방ㆍ인식개선 및 피해자 지원을 위한 모금활동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자는 취지에서 기획했고, 음악과 그림을 기부자와의 매개체로 선정했다.
아동, 직장동료, 남자친구 등 다양한 성폭행 사례들을 일러스트레이터, 작곡가 등 젊은 예술가들과 공유한 뒤 여기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작품들을 음반과 책자로 제작했다. 예술가를 섭외할 때 사실상 무료 재능기부를 호소했는데 선뜻 손을 내민 젊은 일러스트ㆍ동영상 제작자가 7명, 작ㆍ편곡자가 5명 등 12명이나 됐다.
해프닝도 있었다. 주제가 그렇다 보니 성(性)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작품 중 일부가 청소년 불가 등급인 ‘19금(禁)’ 판정을 받은 것이다. 성폭력 정황을 사실적으로 다룬 ‘후배 위하는 선배’란 곡은 일부 가사 내용이 청소년들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인물로 분류돼 배포가 제한됐다. 또 일러스트 작품 중 소녀의 나체를 표현한 작품은 내부 검열 과정에서 ‘옷을 입혀’ 다시 제작했다.
이한별(20)씨는 “자유로운 표현이 제한되다 보니 창작가들의 작품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응은 예상외로 뜨거웠다. 지난 10월 크라우딩 펀드를 통해 피해자 멘토링에 사용할 기부금을 모금했는데 단번에 목표액을 달성했다. 박미래(20)씨는 “100여명이 기부한 자금이 50여만원에 달했다”며 “얼마가 모였는가보다는 우리의 뜻에 공감하고 동참하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에 힘이 났다”고 했다.
‘집에 가는 길’은 손예진(20)씨가 고교 시절부터 시작한 캠페인이다. 우연히 아동 성폭력 예방 사진전을 관람했는데, ‘더 이상의 피해자는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인근 고교생들과 함께 작은 동아리를 만들어 성폭력 예방 활동을 펼쳤다. 대학 진학 후에도 지난해 5월 ‘집에 가는 길-대학 지부’로 확대해 친구들과 함께 활동했다. 현재 대학지부 회원 20여명과 고등지부 회원 등 전체 회원은 100명이 넘는다.
우선은 내달 23일 진행될 ‘성폭력 모의 재판’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게 과제다. 참가자 및 사건 선정과 배역 배분 등 준비작업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디테일을 살리고 공감지수를 높이기 위해 검찰, 경찰, 변호사 등 법조계 관계자들의 자문도 받고 있다. 또 보복 재범 방지를 위한 입안활동도 지속할 예정이다.
손씨는 “성폭력 범죄의 경우 가해자가 가족이더라도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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