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전북 익산시 신동성당에서 열린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이 진행하는 토크 콘서트에서 10대 학생이 인화성 물질이 든 냄비를 가방 안에서 꺼내 불을 붙인 뒤 연단 쪽으로 향하다가 다른 관객에 의해 제지됐다. 냄비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불이 나 관객 200여명이 긴급 대피했다. 연합뉴스

결국 ‘황산테러’까지 등장했다. 종북세력에 대한 증오가 물리적 폭력으로까지 나아간 것이다. 여기서 ‘혐오범죄’라는 개념이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데 유용하다. ‘혐오범죄’(hate crime)란 새로운 범죄유형이라기보다는 어떤 집단에 대한 증오나 편견에 의해 살인, 강간, 폭행, 재물손괴 등 기존의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혐오범죄를 ‘편견에 동기화된 범죄’(bias-motivated crime)라고 부르기도 한다. 혐오범죄는 기본적으로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이기도 하다. 실제로 차별사유로 거론되는 인종, 민족, 사회적 지위, 성적 지향, 종교, 장애인 등은 그대로 혐오범죄의 근거가 된다.

특정한 차별적 속성을 가진 집단의 불특정 다수가 범죄대상이 되기 때문에 혐오범죄는 단 한 건만으로도 집단 전체에 대한 광범위한 공포심을 야기하곤 한다. 증오심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잔혹한 범죄양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증오나 편견이 사회 전반에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기도 하고, 여러 세대에 걸쳐 재생산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혐오범죄의 피해는 광범위하고 지속적이며 확장성이 매우 크다. 서구국가들이 일찌감치 혐오범죄에 엄중하게 대처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혐오범죄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주자ㆍ외국인들에 대한 증오심이 커지고 있음이 이미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으며, 물리적 폭력이 현실화한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반동성애 시위 현장에서는 예전과는 달리 동성애 당사자들을 직접 지목해 악다구니를 퍼붓거나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서구에서 혐오범죄는 주로 인종, 종교, 성적 지향 등에 근거하고 있지만, 한국전쟁과 분단을 경험한 한국사회에서는 이념·사상적 차이에 따른 증오와 편견이 특별히 문제가 돼 왔다. 실제로 정치적 반대파들을 ‘종북세력’이라는 딱지를 붙여 몰아세우는 것은 아주 유용한 공격수단이다. 최근 들어 이런 현상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한편으로 정부는 통합진보당 조직 사건과 위헌정당해산심판 등으로 압박을 가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일부 보수세력들이 ‘종북세력 척결’을 부르짖고 있다. 언론이 이를 조장하거나 부추기기도 한다. 기세등등해진 일부 세력들은 아예 농성장을 직접 철거한다고 행동에 나서거나 시위대와의 물리적 충돌을 불사하기도 한다.

‘황산테러’ 역시 이런 경향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황산테러’에 대해 동정적인 시선을 보내거나, 가해자를 ‘열사’로 지칭하며 모금운동까지 벌이고 있는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와 편견이 물리적 폭력으로 나아가고, 그런 행동이 사회적으로 정당화되면서 다시 증오와 편견이 강화되고 고착화되는 ‘혐오범죄’의 일반적인 확대ㆍ발전 경로와 매우 흡사하다.

가장 근본적인 해법은 증오와 편견을 낳는 사회적 요인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체계적인 중장기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이미 뿌리깊게 자리잡힌 증오와 편견이 하루 아침에 사라질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당장의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도 필요하다. 먼저, 혐오범죄처벌법이 필요하다. 혐오범죄를 가중처벌함으로써 혐오범죄에 대해 우리 사회가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한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세력을 철저하게 고립시켜야 한다. 그런 점에서 ‘황산테러’를 어설프게 정당화하거나 어정쩡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세력들과 철저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특히 정치인이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는 ‘황산테러에 대한 입장’을 철저하게 따져 묻고, 불분명한 태도를 취하는 이들에게는 엄중한 정치적ㆍ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황산테러에 대해서는 애써 모른 채 하며, 오로지 ‘종북’ 문제만을 언급한 엊그제 대통령의 발언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 동안의 공안대책을 반성하면서 폭력에 대한 불관용 입장을 피력해도 부족할 판에 오히려 원인제공자를 탓하고 나선 셈이다. 지금 단계에서 가장 집요하게 질문을 던져야 할 대상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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