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은 ‘내 손 안의 컴퓨터’로 각광을 받으며 세상을 바꿨다. 최초의 터치스크린 PDA기기인 ‘뉴턴 메시지패드’가 원조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통신기능과 비서기능을 탑재하고 1993년 세상에 나왔지만 애플이 5년 만에 제품을 접었기 때문이다. 고가에다 필기기능이 부실해 원성을 샀고, 너도나도 뛰어든 후발주자로 사업성을 잃었다. 무엇보다 당시의 취약한 네트워크 기반에서 뉴턴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으니 너무 일찍 태어났던 셈이다. 하지만 아이폰, 아이패드, 태블릿PC로 이어진 까닭에 ‘고귀한 실패’라는 훈장이 붙었다.
▦ 혁신제품이나 벤처, 자원개발은 여러모로 닮았다. 사업성에 대해 어느 정도 감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밑 빠진 독처럼 자본도 쏟아 부어야 한다. 실패 직전에 기적 같은 성공, 노다지를 맛보는 전설이 넘쳐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원자력 발전과 함께 미국 유타주 모압에서 우라늄 탐광 러시가 있었던 1950년대 찰리 스틴이라는 사람은 원자력위원회가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한 지역을 우직하게 뒤지다 파산 직전에 우라늄 로또를 맞았다. 그는 대출을 거부했던 은행의 주식을 몽땅 사들인 뒤 “절대 탐광자들을 쫓아내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 40조원 투자에 회수 자금이 5조원밖에 되지 않는 사업성과로 국정조사까지 받게 된 이명박 정부의 해외 자원ㆍ에너지 개발. 15일 국회 질의 과정에서 20년, 30년을 내다봐야 할 자원개발을, 5년 단기 성과로 평가할 수 있느냐는 정부 쪽 항변이 나왔다. 새누리당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까지 뒤져보자고 맞서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 때보다 오히려 자금 회수율이 높다는 자료도 나왔다. 국정조사 전초전부터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 단기 성과에 매몰돼 3대 자원공사가 어처구니 없는 투자를 한 곳도 있고, 정부 정책을 이용해 사리를 챙긴 것도 없지 않을 터. 국정조사에서 문제점만 부각되다 해외자원개발에서 손을 떼자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충돌도 마다하지 않고 해외 자원확보에 나서고 있는 중국의 거침없는 행보를 보면, 환부를 정확히 드러내고 장기 비전을 감안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요구된다. 필요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이 나라에서는 ‘고귀한 실패’가 필요하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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