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이 어지럽다. 세월호 사태의 트라우마가 그나마 조금 가라앉는가 싶더니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과 비선 실세들의 국정개입 의혹 스캔들이 터지고,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과 재벌가의 황제경영에 대한 논란이 일면서 현 체제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다시 번지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한국 정치ㆍ경제 권력의 최정점에서 부끄러운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 보임으로써 체제의 정통성에 대한 위기감조차 느껴질 지경이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 우리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할 듯하다. 마침 유엔을 중심으로 2015년 이후 발전 어젠다로서 기존 새천년개발목표(MDG)를 대신할 지속가능발전목표(SDGㆍ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에 대한 논의가 한참이다. 이는 우리의 문제점을 재점검해보고 새로운 발전목표를 모색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SDG는 경제적 번영, 사회적 통합, 환경적 책임과 같은 보편적인 발전목표들을 지칭하는데, 흥미로운 점은 지속가능발전의 기반으로 ‘굿 거버넌스’란 정치적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굿 거버넌스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굿 거버넌스는 자체로 중요한 지속가능발전목표로서 일국적인 차원에서 민주적이고 효과적인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둘째 굿 거버넌스는 다른 경제ㆍ사회ㆍ환경 발전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 필수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즉 지속가능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셋째 지속가능발전은 글로벌한 문제로서 지구적 차원에서 각국의 헌신과 기여 및 협력이 중요하다. 즉 우리가 발전하려면 모두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글로벌 굿 거버넌스의 시각이 요구된다. 넷째 일국적이건 글로벌한 차원이건 지속가능발전을 위해 정부뿐 아니라 기업과 시민사회를 포함해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참여와 협력이 필요하다.
이를 우리에게 적용하면 한국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해서는 우리 정부 및 비정부 행위자들이 힘을 모아 내부적으로 민주적이고 효과적인 제도를 수립하고 외부적으로 지구적 지속가능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기여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요청으로 이어진다. 이와 관련해 얼마 전 한국의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모색하기 위해 개최된 국제회의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특별 자문관이기도 한 제프리 삭스 미국 콜롬비아대학 교수는 한국의 발전이 국제사회에서 지속가능발전의 “빛나는 본보기”가 되는 한편 우리 정부 뿐 아니라 특히 기업부문이 앞장서 지구적 차원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글로벌 리더의 역할을 담당하기 바란다는 화상발표를 한 바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굿 거버넌스 현실은 어떤가? 필자는 한국의 굿 거버넌스 목표를 모색하기 위한 선행작업으로 관련된 평가지표들을 검토한 바 있다. 우선 국내적인 굿 거버넌스에서 몇 가지 문제점들을 노출하고 있다. 가령 세계은행의 거버넌스 지표에서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도 못 미치고 있고, 이코노미스트와 프리덤하우스의 민주주의 지표를 보면 전반적으로 온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되고 있지만 지표 항목별로 약점들을 보이고 있다. 특히 프리덤하우스 언론자유 지표상 우리는 ‘부분자유국’으로 분류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글로벌 굿 거버넌스의 현실은 더욱 열악하다. 모든 관련 지표들이 우리의 노력이 매우 부족한 현실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나의 예로 해외원조, 개도국에 대한 수입개방ㆍ투자ㆍ이주허용ㆍ기술지원 정책, 환경 및 평화유지 공헌 등을 측정하는 개발기여지수 평가에서 한국은 2008년 이후 지속적으로 평가에 포함된 20여 개국 중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다.
어지러운 정국에서 한가한 소리만 하고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어쩌면 ‘지속가능발전과 굿 거버넌스’야말로 대증적 처방을 넘어 근본적인 대책을 모색하는 방안일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 최근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 지수(DJSI) 코리아 평가에서 대한항공은 빠지고 아시아나항공만 편입됐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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