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I 배럴당 60달러선 붕괴
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 2000억원대
"섣부른 환매보다 가격추이 살펴야"
국제유가 60달러 선이 붕괴되면서 1조원대 원유 관련 파생결합증권(DLS) 시장이 초토화될 수 있다는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미 5분의 1 가량이 원금 손실구간에 접어들었고, 만약 유가가 50달러 밑으로 떨어지는 경우 4분의 3 가량이 손실구간에 진입하면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15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유가가 60달러 아래로 떨어지면서 원금 손실구간(녹인ㆍKnock-in)에 진입한 원유 DLS는 약 120종, 발행잔액으로는 2,070억여원으로 추산됐다. 현재 발행돼 있는 원유 DLS 상품이 577종(1조2,519억원)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상품 5개 중 1개 이상이 손실 위험에 처한 것이다.
이 상품은 기초자산인 원유 등에 투자해 가격이 일정 조건 안에서 움직이면 약정된 수익률을 지급하지만, 조건을 벗어나는 경우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 텍사스산(WTI) 원유 선물이 배럴당 58.39달러, 북해산 브렌트유 선물이 62.65달러에 거래되는 등 유가가 불과 5개월 새 반토막이 나면서 속속 손실구간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원유 DLS 발행이 가장 많은 KDB대우증권은 12일 기준 원유 DLS 14종, 발행금액 241억원이 추가로 녹인에 진입했다고 공지했고, 우리투자증권도 이날 WTI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DLS 1722호가 추가로 원금 손실 조건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삼성증권도 원유 DLS 상품 2종이 추가로 원금 손실 구간에 들어갔다고 공지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아직 상환되지 않은 DLS 대부분이 지난해 말에서 올해 초 유가가 상당히 올랐을 때 나온 상품들이어서 녹인 발생 기준이 비교적 높다”며 “만기가 6개월에서 1년으로 짧은 상품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녹인에 진입한 DLS 중에 대신증권 DLS 130호와 133호의 경우 내년 2월, 136호와 141호는 3월 등에 만기가 돌아온다. 이때까지 유가가 70달러 위로 오르지 않으면 이들 DLS는 손실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유가가 내년에 추가로 더 떨어질 우려가 상당하다는 점이다. 미국계 증권사 메릴린치는 내년 WTI가 배럴당 5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고,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도 브렌트유가 내년 평균 53달러까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만약 WTI 기준 배럴당 50달러 이하로 유가가 떨어지면 원금 손실 조건에 도달하는 국내 원유 DLS 규모는 약 7,57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했다.
물론 일시적으로 손실구간에 진입했다고 모두 손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과도한 공포감 탓에 당장 환매에 나서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이유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녹인 구간에 진입한 원유 DLS 상품 대부분이 올해 발행된 DLS여서 만기시점까지 가격추이를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며 “만기가 남지 않은 상품들은 손해가 불가피하겠지만 중도환매보다는 상환일까지 기다리는 게 낫다”고 말했다. 강유진 우리투자증권 연구원도 “공급 과잉과 시장의 비관적 전망이 맞물리면서 유가가 가파르게 떨어지긴 했지만 내년 상반기 이후에는 평균 70달러 선에는 머무를 것”이라며 “변동성이 큰 시장인 만큼 오를 때는 빨리 회복할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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