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硏, 광합성 원리 이용
햇빛ㆍ효소만으로 이산화탄소서
불순물 없는 메탄올 세계 첫 생성
대량생산이 과제
화석연료 없이 햇빛과 이산화탄소로 생활에 필요한 각종 화학물질들을 생산할 수 있는 이른바 ‘태양광 공장’이 실현될 가능성이 열렸다. 지구온난화와 자원고갈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이상적인 기술이지만, 아직은 실험실 수준이다.
한국화학연구원은 15일 “그린화학공정연구본부 연구진이 추가 에너지 투입없이 햇빛과 효소만 이용해 이산화탄소에서 화학공업의 주원료인 메탄올을 불순물 없이 생성해내는데 세계 처음으로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결과는 지난달 ‘미국화학회지’ 온라인판에 ‘하이라이트 논문’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연구를 주도한 백진욱 책임연구원은 “태양광으로 이산화탄소에서 메탄올을 만든 연구는 여러번 있었지만, 대부분 메탄이나 일산화탄소 같은 부산물이 함께 생성됐다”며 “이산화탄소를 거의 100% 메탄올로 변환시킨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 기술의 아이디어는 식물의 광합성에서 착안됐다. 식물이 햇빛을 쪼여 이산화탄소를 자신의 에너지원인 탄수화물(포도당)로 바꾸듯 우리도 ‘인공 광합성’으로 필요한 물질을 얻자는 것이다. 기술 규모를 확대해 원하는 화학소재를 모두 주문생산할 수 있는 ‘태양광 공장’을 만드는 게 연구진의 궁극적 목표다. 실현된다면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성장해온 화학제품 제조업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연구진은 내다보고 있다.
2012년 연구진은 햇빛과 이산화탄소로 이미 포름산과 아릴알콜을 만들었다. 포름산은 플라스틱이나 연료전지, 아릴알콜은 의약품의 주요 원료다. 특히 아릴알콜은 광학이성질체라는 점에서 향후 부가가치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광학이성질체는 구성 요소와 물리화학적 성질은 같지만 왼손과 오른손처럼 서로 마주보는 구조를 가진 화합물을 말한다. 의약품에 흔히 쓰이는데, 어느 한 구조는 약효를 갖지만 반대 구조는 해로운 경우가 많다. 이를 지금처럼 인공적으로 합성하면 두 구조가 모두 만들어져 분리하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 백 연구원은 “우리 기술로는 유용한 구조만 선택적으로 99.9% 만들 수 있다”며 “태양광 반응장치로 생산한 메탄올이 1㎏에 1달러의 가치를 지닌다면, 광학이성질체는 1만~2만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메탄올과 포름산, 아릴알콜 제조 과정은 거의 같다. 연구진이 직접 개발한 광촉매가 들어 있는 태양광 반응장치에 이산화탄소와 효소를 넣는 것이다. 광촉매는 차세대 다목적 소재로 불리는 그래핀에 빛을 흡수할 수 있는 분자를 결합시킨 신물질. 여기에 햇빛을 가하면 태양광에너지가 전자에너지로 바뀌면서 이산화탄소와 효소에서 화학반응이 일어나 메탄올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메탄올 말고 다른 물질을 만들려면 다른 효소를 넣으면 된다. 효소를 바꿔가며 다양한 물질을 원하는 대로 생산해낼 수 있다는 얘기다.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 전기나 열 같은 별도의 에너지를 쓸 필요도 없다.
하지만 생산되는 물질이 아직은 극소량에 불과하다. 상용화하려면 우선 광촉매의 효율을 높이고 장치를 대형화해 경제성을 갖춰야 한다. 생산 가능한 물질의 범위를 넓히려면 효소도 훨씬 다양해져야 한다. 백 연구원은 “아무도 해보지 않았던 시도”라며 “대량생산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추가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화학연이 미래 신성장동력이 될 도전적 과제를 선정해 2009년부터 연간 10억원을 5년간 집중 지원한 성과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