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시장·명동 등 쇼핑가 연말 특수 실종, 매출 크게 줄어
거리엔 흥겨운 캐럴 대신에 "반값 세일" 반응 없는 호객만
12일 오후 서울 남대문시장 내 크리스마스 용품점들은 입구부터 반짝이는 전구와 각종 장신구로 꾸며져 있었지만 가게 주인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곳에서 3년째 크리스마스 용품을 판매하고 있는 윤모(52)씨는 “처음에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물건을 꺼내오고 판매하고 하느라 점심 먹을 시간도 부족했었다”며 “지금은 장사가 덜 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안 된다”고 침체된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꽃과 크리스마스 용품 매장으로 탈바꿈한 대도상가 3층은 크리스마스가 열흘 앞으로 다가온 대목이지만 개인 손님들만 간간히 눈에 띄었다. 꽃 바구니를 절반 가격으로 할인한다는 상인의 호객하는 목소리만 들려왔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매만지던 매장 주인은 “지난해보다 매출이 20% 줄었다. 최근 들어 기업 거래처들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구입하지 않아 거래처도 많이 떨어져나갔다”며 “도매는 11월까지가 끝이고 그 이후로는 교회나 가게, 개인들이 사러 오는데 지금 같이 팔려서는 도저히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한숨을 지었다.
연말이면 가장 바쁘게 돌아가야 할 유통가가 울상이다. 전통시장뿐 아니라 대표적인 쇼핑 거리인 명동, 주요 백화점과 대형마트들의 매출도 신통치 않다. 최근 한파로 인한 반짝 팔리는 방한의류 말고는 전반적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연말이 되면 예약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게 여겨졌던 식당들도 그야말로 썰렁하다. 예전만큼 연말 모임을 많이 하지 않는 데다 술을 적게 마시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매출도 현저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눈이 내린 명동에는 발길 재촉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쇼핑을 하는 사람들은 중국인 관광객들뿐이었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럴 대신 호객행위를 하는 점원들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명동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숫자는 ‘50’이다. ‘반값 행사 중이다’ ‘사은품을 증정한다’며 고객들을 불렀지만 멈춰서는 발걸음은 많지 않았다. 문을 열어놓고 고객을 기다리던 한 화장품 가게의 점원 김모씨(32)는 “연말이라 해도 평일에는 연말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며 “장사가 잘 되면 연중 최대 대목에 세일행사를 뭐 하러 하겠냐”고 반문했다. 명동에서 의류보세업을 하는 김모(36)씨는 “중, 고등학생들이 연말에 옷 사러 오던 발길 뚝 끊겼다”며 “겨울의류가 가격이 비싸니 옷 장사 하는 사람들에게는 연말이 대목인데 올해는 외투보다는 가격이 싼 스웨터만 팔리고 있어 연말 특수라는 말은 실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명동역 6번 출구에 있는 밀리오레는 1, 2층에서만 이른 바 ‘보세’ 옷을 판매 중인데 1층에만 빈 점포가 6개 이상이었다. 약 400평 정도의 면적의 공간에 손님은 5,6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한 점포주는 “장사가 잘 되는지 안 되는지는 보면 금방 알 것”이라며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단 내일이 더 장사가 안 된다”고 한탄했다.
백화점들도 연말이지만 식품 매장이 북적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화장품이나 의류 매장에는 손님이 없는 상황이다. 원래 젊은 여성고객들과 중고등 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여성 L브랜드 점장은 “지난해만해도 수능 끝나면 부모들이 자녀들과 함께 와서 40만원대 코트, 80만원대 오리털 점퍼도 많이 사줬는데 올해는 그런 손님 뚝 끊겼다”며 “젊은 여성 고객들도 구매를 꺼리고, 방문 고객 수도 전반적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백화점들의 겨울 세일 실적이 저조하자 백화점들은 국내브랜드뿐 아니라 해외고가브랜드, 아웃도어 브랜드까지 역대 최대 규모로 할인행사에 돌입한 상황이다.
외식업체들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한국외식업중앙회 부설 외식산업연구원이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6일까지 국내 549개 식당을 대상으로 11월 매출과 12월 예상매출을 조사했는데, 73%의 외식업체들이 작년 11월보다 매출이 줄었다고 답했고 90%는 이달에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거나 비슷할 것으로 전망했다. 명동에서 10년 넘게 일식점 운영하는 신모(48)씨는 “연말에는 송년회뿐 아니라 연말 분위기를 즐기려는 연인, 친구, 가족들 많이 오는 편인데 올해는 뜸하다”며 “연말 술자리도 1차만 하고 끝내는 분위기라 술도 잘 안 팔리고 연말인지 연초인지 구분도 안 된다”고 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전혼잎기자 hoihoi@hk.co.kr
박나연인턴기자 (경희대 호텔관광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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