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출신 교수ㆍ로스쿨 학생 구성
돈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 무료 상담
한양대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돕기도
대학에서 시설관리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A(60)씨는 갑자기 살고 있는 집을 날리게 될 위기에 처했다. 형사사건으로 구속된 처남을 대신해 상대방과 합의에 나섰다가 약속어음을 잘못 써줬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3,000만원을 받으면 합의서를 써주기로 약속했지만, 이와 별도로 1억원의 약속어음과 A씨 명의의 소형 아파트에 합의금 채무 이행을 담보하기 위한 근저당권 설정을 요구했다. 거부할 시 합의하지 않을 것이며, “3,000만원을 주면 어음을 돌려주고 근저당권도 해제해준다”고 압박했기에 A씨는 마지 못해 수락했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비껴가지 않았다. 상대방은 A씨에게 1억원을 지급하라며 지급명령신청서를 법원에 접수했고, A씨는 1억원을 갚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답답했지만 도움을 구할 곳이 없었던 A씨는 지난해 말 소속 대학인 이화여대의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 ‘리걸 클리닉’에 문을 두드렸다. 변호사 출신의 교수와 로스쿨 학생으로 구성된 리걸 클리닉은 A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무료 법률상담을 해줬고, A씨는 1심에서 기존에 약속한 3,000만원만 갚으면 된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2009년 로스쿨 출범 이후 리걸 클리닉이 서민들의 무료 법률상담 창구로 자리 잡고 있다. 리걸 클리닉은 로스쿨 학생들이 책을 통한 공부와는 별도로 법률 상담, 소송 등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실무능력을 키우는 활동을 일컫는다.
12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법학관에서 열린 ‘리걸 클리닉 우수 사례 발표회’에서는 A씨 상담 사례 외에도 이화여대 로스쿨이 매달 넷째주 월요일마다 서대문구청에서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무료 법률 상담 사례도 소개됐다.
자그마한 반찬 가게 사장님인 B(75)씨는 주변 점포의 리모델링 공사로 설치된 벽 때문에 갑작스럽게 가게를 운영할 수 없게 되자 리걸 클리닉의 문을 두드린 사례다. B씨는 장사를 할 수 없게 됐지만 법원은 해당 점포는 원래 칸막이 등이 없어 상가의 독립성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소유권을 주장할 권리가 없다면서 “벽을 철거해달라”는 요청을 기각한 상태였다. 리걸 클리닉을 찾은 그는 “대신 업무방해 등으로 형사 고소하는 방법이 있다”는 조언을 얻어 현재 이들의 지원으로 형사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
이화여대에 따르면 지난해 3월~올해 2월을 기준으로 할 때 불과 1년 사이 리걸 클리닉이 상담한 건수는 332건이며, 실제 소송까지 수행한 사건은 41건이나 된다. 변호사 시장의 불황을 감안할 때 이 정도면 웬만한 개인 법률사무소와 견줘도 손색이 없다. 이화여대 로스쿨은 이런 공로를 인정 받아 교육부 주관의 리걸 클리닉 지원 사업 관련 평가에서 3년 연속 최우수 리걸 클리닉으로 선정됐다.
법률 도움을 구할 곳이 마땅찮은 사회적 약자들을 돕기 위한 리걸 클리닉 활동은 다른 학교에서도 활발하다. 성균관대 로스쿨의 경우 지난 5월 서울 혜화경찰서와 업무협약을 맺고 매주 금요일 관내 파출소에서 지역 주민을 상대로 무료 법률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연세대 고려대 로스쿨 등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무료 법률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 도서출판 등 금지 가처분 신청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박 교수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을 지원한 것도 리걸 클리닉(한양대 로스쿨)의 대표적 활동 사례로 손꼽힌다.
권태상 이대 로스쿨 교수는 “주변에 변호사가 없거나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리걸 클리닉이 단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리걸 클리닉을 활성화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