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순수이성비판’ 강독반에서 총무를 맡은 이는 스스로를 ‘백두’라고 부른다. 머리가 하얗게 센 60대 전직 교사이니 제자들이 지어준 별명일까. 교사 출신답게 그는 20~50대 칸트 강독 참여자들로 카톡 그룹을 만들어 매주 금요일마다 출석을 독려한다. 그가 금요일마다 참여하는 강의와 세미나는 순수이성비판 외에도 ‘서양철학사’와 ‘근대철학’이 더 있다. 강의나 세미나 한 번이 2~3시간은 지속되니 금요일마다 7~8 시간씩 공부하는 셈이다. 이 뿐 아니다. 월요일에는 칼 막스의 ‘자본론’ 강의, 목요일에는 헤겔의 ‘정신현상학’ 강독에 참여하느라 공동체를 찾는다. 여기에다 주역 강독과 독일어, 프랑스어 공부도 넘보고 있으니 백두 선생의 강의, 세미나 참여 시간은 웬만한 대학생을 능가한다.
수강하는 강의를 하나하나 늘려가던 그가 지난 주 공동체에 개설된 대안 철학대학원 과정에 등록했다. 기왕 시작한 공부, 좀 더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어서란다. 건강 문제 때문에 정년이 되기 전에 명예 퇴직했다는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말한다. “‘배우고 때로 익히는 것이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하신 공자의 말씀을 이제야 비로소 알겠다, 나이가 든 뒤에도 이렇게 공부할 곳이 있다는 게 참으로 고맙고 다행스럽다.”
지난 주 스피노자 ‘에티카’와 주역 강좌 개강으로 정신없이 바쁘던 날, 연세 지긋한 이가 말없이 서서 기다리기만 했다. 한참 만에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더니 ‘에티카’를 들으러 왔단다. 등록은 나중에 하시라고 하고 이름부터 물었다. “○○○입니다.” “유명한 건축가와 성함이 같으시군요. 동명이신 듯한데 혹시 그 분을 아시는지요?” “제가 그 사람입니다.”
예상치 못했던 답변에 나는 당황했다. 국내 최고로 평가받는 건축가이자 대학 교수이던 그를 만난 것이 10년 전. 그는 그때 나와 무슨 일을 했는지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쉬는 시간, 지난 강의 자료를 나누기 위해 강의실을 들여다보니 그는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이었다.
20~40대가 대부분인 공동체에 60대 이상 참여자가 부쩍 늘었다. 한문 원전을 읽는 전직 대기업 CEO도 있고,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는 노학자도 있다. 영어 인문학서 읽기를 시작한 60대 은퇴자도 있고, 문학수업에 나선 70대 주부도 있다. 고령 참여자가 늘고 있는 것은 수학 기간이 3년이나 되는 대안 철학대학원 과정도 마찬가지다. 여러 이유로 공부와 멀어지기 쉬운 나이, 이들이 공부에 열정을 불태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10여 년 전, 대한불교조계종이 마흔 살을 넘은 사람의 출가를 금지한 적이 있었다. 마흔 살 이상 출가자가 많아 행자와 사미가 고령화하고 위계질서가 흔들리는 것도 문제거니와 뒤늦게 출가해봐야 공부와 수행의 성취도 쉽지 않다 게 이유였다. 당시 나이 마흔을 갓 넘기고 있던 나는 출가할 자신도, 계획도 없으면서 이를 강하게 반대했다. 마흔이야말로 인간과 세상을 본격적으로 돌아볼 나이이자 비로소 수행을 생각할 나이인데 이를 막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공부할 필요를 느끼기 위해 나이가 들어야 하는 것은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도 마찬가지인지 모른다. 진학과 취업, 그리고 살아남기에 급급한 젊은 시절엔 인문학을 공부할 여유를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출가수행이든, 인문학이든 젊어서 하는 게 좋은 것은 분명하다. 난해한 개념어의 이해나 기억에도 젊은 두뇌가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성찰을 본령으로 하는 인문학 공부엔 삶의 경륜과 신산을 몸에 새긴 이들이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 변경론’이란 책으로 알려진 일본의 우치다 타츠루도 “학창 시절인 20대에는 그리 난해하던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 책들이 수십 년 세월을 돌아 다시 읽어보니 술술 이해되더라”며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라는 책까지 쓰지 않았던가. 젊어서만 가능한 몇몇 분야의 전문적인 공부와 달리 인문학은 나이 들어서도 잘 할 수 있는 공부다. 철학은, 인문학은 어른이라면 반드시 해야 할 공부일 뿐 아니라 어른이 하기에 좋은 공부이기도 하다.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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