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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KDI 디플레 논쟁, 경기 부진 책임 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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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KDI 디플레 논쟁, 경기 부진 책임 피하기

입력
2014.12.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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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더 내려 저물가 대응하라" KDI, 한은에 직격탄

"저유가 등 잦아들면 나아질 것" 한은, 기준금리 동결하며 대반격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디플레 논쟁’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디플레이션 진입 가능성을 둘러싼 양측의 공방은 급기야 수장들까지 나서며 자존심을 건 공개 대결로 확대되는 형국이다. KDI가 기획재정부 산하 국책연구원인 만큼 한은 정부간 대리전과 다름없다는 해석 속에 논쟁은 경기 부진에 대한 양측의 책임 공방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먼저 공세에 나선 건 KDI. KDI는 지난달 25일 출입기자 대상 정책세미나를 열고 우리 경제가 1990년대 디플레이션에 빠지기 직전의 일본과 닮은꼴이라고 경고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일본 경제가 버블 붕괴에 따른 수요 부족으로 물가와 성장률이 여러 해 동반 하락하며 장기침체에 빠져드는 동안 통화당국이 물가를 적정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에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추가적 금리 인하론을 편 셈이다.

이달 3일에는 김준경 KDI 원장이 직접 나서 한은에 기준금리 인하를 요구했다. 김 원장은 이날 학회 행사에서 “물가상승률이 한은의 목표범위(연 2.5~3.5%)를 하회한 지 25개월째”라며 “저물가의 부작용을 막으려면 한은이 명확한 통화정책 의지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KDI는 10일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연 3.8%→3.5%)하기 하루 전에도 조동철 수석이코노미스트의 발언을 통해 “한은이 금리 정책에 경직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재차 공세를 폈다.

한은은 즉각 반격했다. 지난달 KDI 보고서 발표 직후엔 “디플레이션 진입이라는 희박한 가능성을 보고 통화정책을 취하라는 것은 로또를 사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냉소했다. 또 이달 4일에는 국민소득 통계를 정례 발표하는 자리를 빌려 상대방 논리를 정면 반박했다. 총체적 물가수준 지표인 국민총생산(GDP)디플레이터가 최근 두 분기 연속 제자리걸음인 것을 근거로 소비자물가가 추후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한 KDI에 맞서 “GDP디플레이터와 소비자물가는 함께 움직이며 지금은 유가 하락, 환율 변동의 영향권에 있다”고 밝힌 것이다. 외부 여건의 변동성이 잦아들면 두 물가지표 모두 다시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는 반박인 셈이다.

11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는 한은의 ‘대반격’ 무대였다. 금통위원 7인은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이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주열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KDI의 내년 경기 전망치를 언급하며 “3%대 성장과 1~2%대 물가상승률을 (경기침체와 물가하락이 동반하는)디플레라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한은의 날선 대응을 두고 “KDI 배후에 정부가 있다”고 여기는 시장 여론을 의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7월 취임 이후 노골적인 금리 인하 요구로 한은을 당혹스럽게 했던 최경환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최근 들어 “한은이 짧은 시간에 연달아 기준금리를 내렸다”고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여왔다. 그럼에도 지난달 KDI 보고서 발표 이후 추가 금리 인하 기대감으로 채권금리가 연일 하락하는 등 시장은 정부의 부양 기조 쪽에 쏠려있는 분위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은 입장에선 또다시 정부와 시장에 떠밀려 금리를 내리는 듯한 수세적 태도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두 차례 기준금리 인하와 부양정책 드라이브에도 좀체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상황이 양측의 첨예한 신경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논쟁에서 밀렸다가 자칫 경기 부진 책임을 떠안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KDI가 저물가 위험을 들어 금리 추가 인하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한은은 저성장의 구조적 요인을 거듭 지적하며 정부 및 시장의 개혁 노력을 촉구하는 논쟁 구도를 정부와 한은의 책임 공방으로 해석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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