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국가 안보 앞세워 편집 요청 보고서 공개 전 빠졌다" 가디언 보도
비밀시설 설치·운영방식 속속 공개
"빈 라덴 사살 작전에 정보 제공" CIA국장-상원정보위장 정면 충돌
중앙정보국(CIA) 고문 보고서를 둘러싸고 미국 정치권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CIA가 고문이 자행된 비밀시설을 영국ㆍ폴란드 등 동맹국의 협조 아래 어떤 방식으로 설치운영했는지에 대한 구체적 사실이 속속 공개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001년 9·11테러 발생 직후만 해도 CIA는 미국 법과 규정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테러 용의자를 체포ㆍ심문하는 방법을 검토했다고 11일 보도했다. 또 CIA 비밀 시설들도 최초에는 미국 기준에 따라 심문하는 시설로 구상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비ㆍ경계는 삼엄하지만, 강압적이거나 고통스러운 심문을 금지하는 미 육군 야전군 교본이 벤치마킹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CIA가 갑자기 ‘다른 접근법’을 선택한 이유가 분명치 않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어쨌든 CIA는 온건한 심문을 포기하는 대신 제임스 미첼과 브루스 제슨 두 명의 심리학자에게 8,100만달러(약 898억원)를 지급하고, 두 사람이 설립한 회사가 제안한 가혹한 구금ㆍ심문법을 채택했다.
CIA가 고문 심문을 최초로 적용한 용의자는 2002년 3월 체포된 알카에다 조직원 아부 주바이다였다. 그는 체포 과정에서 심한 총상을 입어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지키는 가운데 며칠을 병원서 보냈다. 또 CIA 조사에 협조적이었고, 유용한 정보들을 제공하기는 했으나 “미국에 대한 음모에 관해서는 아는 게 없다”고 주장했다.
CIA는 그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판단 아래, 3주간 물고문을 가했으나 ‘미국에 대한 음모’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캐내지 못했다. 뉴욕타임스는 “CIA는 그때 서야 그가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미 상원은 보고서 공개 과정에서 전통적 맹방인 영국을 배려, 영국 당국과 관련한 내용을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디언은 영국 정보당국이 ‘국가 안보’를 앞세워 편집을 요청했으며, 영국과 관련된 내용들이 보고서 공개 전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의 대변인도 “보고서 요약본과 관련해 우리 정보기관들과 미국측 상대 간에 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며 우리가 다른 보고서에 대해 해왔을 수 있듯이 국가 안보라는 전제 아래 원본 수정 노력은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가 공개한 500쪽짜리 요약본에는 영국 정보기관과 관련한 언급이 전혀 없지만 요약본은 전반적으로 상당한 편집이 이뤄진 만큼 미국 동맹국들에 대한 언급이 지워졌을 것이라는 게 가디언의 설명이다.
한편 존 브레넌 CIA 국장과 조사를 주도한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 정보위원장이 이날 공개적으로 정면 충돌했다. 브레넌 국장은 이날 버지니아 주 랭리의 CIA 본부에서 “제한적인 경우에서 우리 요원들이 가혹하고 승인 받지 않았으며 혐오스러운 심문 기법을 사용했다”고 인정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고문을 받은 용의자들이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 작전 수행에서 도움이 되고 실제로 사용된 정보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TV를 지켜보던 파인스타인 위원장은 생중계 도중 트위터를 통해 “빈 라덴 사살로 이어진 핵심 정보는 고문과는 관련이 없다”며 “보고서 378쪽에 이 점을 분명히 입증해주는 증거가 있다”고 반박했다.
브레넌 국장은 또 CIA의 고문 실상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잔혹했던 것과 관련해 “대통령과 미국인들을 의도적으로 속이려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파인스타인 위원장은 고문 심문기법이 시작된 지 4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정확한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맞받아 쳤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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