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시도민구단들이 신음하고 있다. 가장 큰 돈줄인 지자체들의 살림은 팍팍해지고 지자체장을 바라보며 축구단을 지원했던 기업들도 얼어붙은 경기 속 지갑을 닫고 있다.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시도민구단들은 기본적인 구단 운영에 들어가는 최소한의 비용마저도 스스로 확보하지 못한 채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직 구단주로 이름을 올린 정치인들은 해체를 거론하며 시도민구단 운영에 대한 거북함을 대놓고 드러낸다. 구단들도 지금까지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건 아니다. K리그 인기가 곤두박질 치기 시작하던 몇 년 전부터 위기의식을 느낀 구단들은 선수단과 사무국 규모를 축소하고 지출을 줄이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적자 폭을 줄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올해 이처럼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희망을 본 두 팀이 있다. 이번 시즌 K리그 챌린지(2부 리그) 우승과 구단 운영의 투명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대전시티즌과 과감한 제살 도려내기로 재무건전성을 확보한 강원 FC다. ▶(上) K리그 시민구단의 비참한 오늘
●힘들어도…허리띠 조이고 더 뛰어야
대전시티즌은 한 때 K리그의 암 덩어리 취급을 받았다. 지난 2011년 수면 위로 떠오른 승부조작 사건에 다수의 대전 소속 선수들이 연루돼 팀 이미지에 직격탄을 맞았다. 그 때부터 팀의 인기와 성적은 곤두박질 쳤고, 급기야 지난해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며 K리그 챌린지(2부 리그) 강등의 쓴맛을 봤다.
당시 구단주였던 염홍철(70) 대전광역시장은 강등 이후 파격적인 사장 인사를 단행했다. 자신의 선거 캠프 출신인 38세의 김세환 대표이사에게 구단의 회생을 맡겼다. 그의 등장에 축구계에서는 '심해도 너무 심한 낙하산'이라는 비난이 일었다. 하지만 김 사장은 아랑곳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가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한 그는 곧장 팀 리빌딩에 착수했다.
우선 팀에 주어진 86억 원의 예산 중 19억 원을 전임자로부터 물려받은 채무를 갚는 데 썼다. 나머지 67억 원으로 한해 살림을 꾸려나가야 했기에 허리띠를 꽉 조일 수밖에 없었다. 우선 47명 규모의 선수단을 33명으로 줄였다.
선수단은 비교적 연봉이 높지 않은 24대 초중반 선수들 위주로 꾸렸다. 그 대신 선수들은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얻었고, 남들보다 한 발씩 더 뛰며 그 기회를 살린 임창우(22·아시안게임 대표) 서명원(19·U-19 대표) 송주한(21·올림픽 대표)은 태극마크를 달며 자신의 가치를 높였다.
김은중(34) 영입 역시 신의 한 수였다. '레전드'의 귀환에 팀 정체성은 물론 '스토리'란 무형의 가치도 얻었고, 젊은 선수들에겐 훌륭한 역할 모델이 됐다.
●아파도…썩은 살은 도려내야
강원FC는 올해 초만 해도 해체설이 나돌던 팀이다. 2부 리그 강등과 극심한 재정 악화로 위태로운 나날이 계속됐다. 이 와중에 지난 3월 전 현직 직원의 횡령 및 배임 의혹마저 불거지며 곪을 대로 곪았던 고름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임 사장은 발 빠르게 강원도에 자신을 포함한 모든 직원에 대한 특별감사를 요청했다. 지난 6월 27일 발표된 감사 결과에서 전현직 직원의 유흥·퇴폐업소에서의 법인카드 사용(8,100만 원), 사용처가 불분명한 상품권 구매(5,800만 원), 화환 구매 리베이트 횡령(2,200만 원) 등 비위 사항들이 사실로 확인됐다. 고름을 짜낸 임 사장은 재발 방지를 위해 살을 도려내겠다는 심경으로 4건을 검찰에 고발, 현재 조사 중에 있다.
선수단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대전과 마찬가지로 선수단 대부분을 연봉이 낮은 25세 이하로 꾸렸고, 인원 역시 46명에서 29명으로 17명을 줄였다. 지난해 36억 6,000만 원이던 선수단 총 연봉은 올해 14억 1,000만 원으로 줄였다. 이 같은 노력으로 지난해 말 기준 80억 원이 넘던 부채를 올해 10월까지 64억 원으로 줄였다.
●더뎌도…멀리 바라보고 걸어야
올해 시도민구단 운영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히는 두 팀이지만 공교롭게도 두 팀의 사장 역시 정치적 외풍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장기적 구상을 묻자 김세환 사장은 "당장 어찌 될 지 모르는 입장"이라는 전제를, 임은주 사장 역시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 지 모른다"는 전제를 깔았다.
이처럼 자신의 운명마저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두 사장은 "시도민구단은 당장의 성적이 최우선 목표가 돼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김 사장은 "시도민구단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고 강조하면서 "대전의 경우 내년에는 1부 리그 12개 구단 중 성적 1위가 아닌 효율성과 투명성에서 1위를 하는 것을 우선적인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이어 축구라는 콘텐츠 가치에 대한 냉철한 재평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축구인들은 축구가 굉장히 좋은 콘텐츠라고 생각하지만 광고 시장이나 기업에서 바라보는 축구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면서 "다른 종목의 프로구단의 성공 사례까지도 받아들이고 협력할 부분이 있다면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짚었다.
지금까지 회생에 목숨을 걸었던 강원은 한숨을 돌린 내년부터는 그간 미진했던 마케팅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물론 마케팅에 쏟을 돈은 많지 않다. 그래서 임 사장이 택한 방법은 '발로 뛰는 마케팅'이다. 특히 내년 시즌에는 그간 홈 경기의 절반을 소화했던 강릉종합운동장이 96회 전국체전 준비에 들어가 창단 후 처음으로 속초를 홈 구장으로 쓴다. 광역 연고 팀인 강원으로선 '새 시장' 속초 개척을 위해 비시즌 기간 동안 선수는 물론 구단 임직원까지 대학 축구동아리 및 조기축구회 등 생활체육 현장으로 뛰어들어 지역 축구인들과의 유대 관계를 강화할 계획이다.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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