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허송? 여론 수렴 부족은 인정, 아무 일 안 했다는 비판은 아쉬워
내년 6월까지 활동 기한 연장, 어차피 누군가는 나서야 할 일
나라 곳곳이 원자력 갈등으로 몸살을 앓는 중이다. 경주 중ㆍ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은 우여곡절 끝에 29년만에 가동이 결정됐지만, 계속운전 여부 결정을 앞둔 원자력발전소(월성 1호기, 고리 1호기)를 둘러싸고 극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지난달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이하 공론화위)가 기름을 부었다. “사용후핵연료를 영구적으로 처분하기 위한 시설이 2055년 전후로 국내에 건설, 운영돼야 한다”는 공식 의제를 발표한 것이다. 사실상 또 다른 원자력 시설 부지 선정을 예고한 것이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는데 쓰고 남은 연료로 고준위 방사성물질이 다량 들어 있다. 국내 원전 내에 임시로 저장 중인 공간이 조만간 포화상태가 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처리를 해야 한다. 이 방안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공론화위가 지난해 출범했다. 그러나 공론화위의 의제 발표 직후 여론은 들끓었다. “제대로 된 여론 수렴 없이 답안부터 내놓았다” “‘공론(公論)’이 아니라 ‘공론(空論)’에 그쳤다” “시작만 요란하고 1년 허송세월했다”는 등 갖가지 비판이 쏟아졌다. 이를 의식한 듯 공론화위는 더 일해보겠다며 내년 6월까지 활동 기한을 연장했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홍두승(64) 공론화위 위원장을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 퇴계로에 있는 공론화위 사무실에서 만났다. 마침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서 내년 정년을 앞두고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온 직후였다.
_종강 기분이 여느 학기와 다르겠다.
“3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만하면 많이 했다. 시원과 섭섭 중에 꼽으라면 시원 쪽이 맞겠다(웃음). 이제 강의 안 해도 되니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활동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_지난달 발표한 의제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들을 보고 어땠나.
“여론 수렴이 부족했다는 부분은 우리 스스로도 인정했다. 비판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고 본다. 오히려 사용후핵연료 문제로 사회가 더 시끄러워지면 좋겠다. 하고 싶은 얘기들을 묻어두지 말고 누구나 공개적으로 주고받자는 것이다. 다만 공론화위가 아무 일도 안 했다는 비판은 솔직히 아팠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는 사실 각종 포럼이나 연구 등에서 200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다뤄졌다. 하지만 공론화라는 게 뭔가를 정해놓고 시작해선 안 되기 때문에 위원회는 백지 상태에서 출발했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최대한 들으며 와야 했기 때문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못했을 뿐 지난 1년간 쉼 없이 달렸다.”
_지난 활동에서 어떤 부분이 부족했다고 보나.
“공론화위의 임무는 사용후핵연료를 바라보는 민심을 짚어내 이를 반영한 정책 방향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론화위 위원 12명 중 5명은 원전소재지역특별위원회에도 소속돼 있다. 원전이 있는 5개 지역(경주시, 기장군, 영광군, 울주군, 울진군)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세월호 사고가 터지고 지방선거가 이어지면서 지역 위원들이 공론화위 활동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연장한 기간 동안 공론화위의 가장 핵심적인 활동이 바로 원전소재지역특별위원회를 통한 지역 의견 수렴이 될 것이다.”
_위원 구성에 시민단체나 환경단체가 빠져 있는데.
“지난 활동에서 부족했던 또 다른 부분이다. 현재 위원들 말고 시민환경단체 몫의 위원 자리 두 개가 아직도 비어 있다. 위원 구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애초에 위촉된 시민환경단체 소속 위원 두 명이 참여를 거절한 것이다. 이 역시 우리 사회 한편의 의견인 만큼 수용했다. 다만 위원들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위촉해 구성됐기 때문에 공론화위가 변경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남은 기간 동안 두 자리는 계속 열어둘 생각이다.”
_시민환경단체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복안은 있나.
“꾸준히 접촉하고 있다. 꼭 위원으로 참여하지 않더라도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생각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꼭 표현해달라고 요청하는 중이다. 사회학자로서 시민활동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
_얼마만큼 공론화를 해야 다수가 ‘충분하다’고 여길지 참 모호하다.
“세계적으로도 보편적, 절대적 기준은 없다. 원자력 시설을 짓기 전 어떤 나라는 1년도 안 돼 공론화를 마쳤다고 하고, 어떤 나라는 공론화만 3년 가까이 거쳤다고도 한다. 분명한 건 지금 우리나라 상황에선 공론화 기간을 질질 끌 수 없다는 점이다. 사용후핵연료 문제가 그만큼 시급하기 때문이다. 원전 내 수조가 2016년이면 사용후핵연료로 꽉 찬다.”
_포화 시점을 두고도 논란이 많은데.
“현재 상태로 가면 2016년 제일 먼저 고리 1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가 포화된다. 2024년까지도 저장 가능하다는데 포화 시점이 무슨 고무줄이냐는 얘기도 있지만,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사용후핵연료가 담긴 용기를 지금보다 서로 바짝 붙일 경우 8~10년 더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간단한 방법이라고 하는데,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을지 문제가 제기된다.”
_원자력 시설을 지으려고 일부러 겁 주면서 공론화를 서두르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겁주는 게 아니다. 정말 코 앞이다. 사용후핵연료 수조가 가장 늦게 포화되는 시기가 2038년(신월성)이다. 월성 원전에선 사용후핵연료를 수조 대신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사일로)에 보관하는데, 2041년이면 허가가 끝난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역산한 결과가 지난달 발표한 의제다. 영구처분 시설을 2040년까지 건설 완료하고, 5년간 시운전을 거친 뒤 2045년부터는 운영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사일로 허가기간이 10년 연장 가능한 점을 고려하면 늦어도 2055년까진 갖춰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어떤가.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공론화가 시급하고 최소한의 기간만 들여야 하는 이유다.”
_영구처분 시설 운영 시기가 구체적으로 언급된 건 처음이었다.
“지난달 발표한 의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그 시기다. 사용후핵연료로 재처리를 하든 재활용을 하든 분명한 건 사용후핵연료는 남게 된다. 재처리나 재활용을 안 하면 현재의 사용후핵연료 전체가 폐기물이 되고, 하면 폐기물 양만 줄어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공론화위의 의제가 정답이란 얘기는 아니다. 본래 공론화에는 답이 없다. 정부 역시 공론화위가 제출한 권고안을 다시 검토할 것이다. 공론화는 끊임없이 여러 사람의 생각을 듣고 가장 적절한 의견을 도출해내는 과정일 뿐이다. 국내에서 처음 이뤄지는 이번 공론화 시도는 사회학적으로도 큰 의미다. 때문에 모든 활동을 감추지 않고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_갈등 문제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비롯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원자력 갈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갈등은 무작정 풀려고(solve) 들면 안 된다. 문제에 접근(access)해 관리한다(manage)는 생각으로 다뤄야 한다. 많은 이들이 갈등을 부정적으로 보지만, 반드시 그렇진 않다. 현대처럼 복잡한 사회에선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고, 때론 갈등이 사회 전체에 생동감을 주면서 발전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_원자력 전문가가 아니지 않나. 왜 굳이 나섰는지, 대표로 비판 받는 게 억울하진 않은지 궁금하다.
“공론화위 출범 당시 위원들에 의해 선출됐다. 어차피 누군가는 나서야 할 일이다. ‘홍 위원장은 물러가라’고 쓰인 플랜카드까지도 다 국민 의견이라고 본다. 경주 중ㆍ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부지선정위원 등을 거치면서 원자력 갈등에 관여한지 25년째다. 원자력 전문가들이 공학적으로만 접근해선 어려운 측면이 있다.”
_국민들이 원자력 전문가 집단을 마피아라고 부른다. 원자력계 스스로 자초한 부정적 인식이 사용후핵연료처럼 진지한 공론화가 필요한 문제에 부메랑이 돼 돌아오는 것 같다.
“부정적 인식이 공론화 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까지 가정하는 안전 방책들이 마련돼야 한다는 점에서 부정적 여론 역시 순기능이 있다.”
_경북 울진군과 지난달 신한울 원전 건설에 합의하는 등 정부가 원전 확대 일변도의 정책을 펴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나라 원자력 정책은 국가 에너지기본계획에 따르는 것이다. 원전을 추가로 짓든 안 짓든 관계 없이 사용후핵연료는 이미 존재한다. 공론화위는 이를 처리할 방안을 모색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_수명을 다한 월성이나 고리 원전의 계속운전 여부도 공론화가 필요하지 않나.
“전문가들이 판단할 문제지 공론화 영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전문가들끼리의 공론화는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 다만 전제 조건은 반드시 국민의 안전이어야 한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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