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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촛불, 이념보다 상식이 시민운동 중심에 서게 된 전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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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촛불, 이념보다 상식이 시민운동 중심에 서게 된 전환점

입력
2014.12.1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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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SOFA(주둔군지위협정) 전면 개정, 살인 미군 처벌, 미국 공개 사과.”

2002년‘신효순ㆍ심미선양 미군장갑차 사망사건’ 촛불시위에서 시민들이 외쳤던 구호다. 그러나 어느 하나도 실현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당시 촛불은 큰 의미를 남겼다. 무엇보다 ‘시민의, 시민에 의한 집회’였다는 점이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미문화)는 “2002년 촛불시위에서는 연인, 친구, 자녀를 동반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두드러졌다”며 “특히 1990년대와 달리 안보 보다는 안전, 이념보다는 상식이 시민운동의 중심에 서는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했다.

2002년 촛불 든 시민의 각성은 2008년 50만 명이 광화문에 운집하는 ‘광우병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이 교수는 “두 촛불은 독립국가 대 독립국가, 세계시민 대 세계시민으로서 미국에 대등한 관계, 준법과 정의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과거의 이념적인 ‘반미’와는 차원이 달랐다”고 말했다.

2002년의 촛불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또한 던졌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인터넷을 통해 수평적으로 연결된 시민 사이에 ‘국가가 우리를 보호하지 못하면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됐고 광장으로 나오게 했다”고 분석했다.

12년이 지났지만, 불평등한 한미 관계는 우리에게 여전한 숙제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도 그대로다. 유명무실한 운영방안 개선만 있었을 뿐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권정호 변호사는 “주한미군의 공무 중 범죄에 대해선 한국이 사실상 재판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조항 외에도 기소시 미군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는 경우를 극히 제한한 22조 5항, 무죄판결에 상소가 불가능한 22조 9항 등 곳곳에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2005년 유가족 등의 정보공개청구로 밝혀진 미군 범죄수사대(CID) 수사자료와 의정부지검의 수사기록 등으로 더 큰 공분이 일었다. 사고 차량의 운전병이 여중생을 볼 수 있었고 재판 때의 주장과 달리 관제병과 통신 장애도 없었다는 근거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권 변호사는 “2002년 사고 당시 한국 정부가 재판권을 행사했더라면 결코 무죄로 판결 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한미 SOFA를 전면적으로 개정해야 미군 범죄를 제대로 처벌하고 국민의 기본권도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두 여중생의 유가족에게도 촛불 든 시민은 각별하다. 고 심미선양의 아버지 심수보(59)씨는 “2002년 광화문 거리에 끝없이 펼쳐진 촛불을 보고 ‘시민이 우리를 대변해주는구나, 정부도 못하는 일을 시민이 대신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에 큰 힘이 됐고 한편으로는 죄인 된 심정이 들어 미안했다”고 돌이켰다. 고 신효순양의 아버지 신현수(60)씨 역시 “그때의 고마움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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