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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잉여들의 왕, 잭 블랙의 '영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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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잉여들의 왕, 잭 블랙의 '영웅론'

입력
2014.12.1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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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테네이셔스 디 인 더 픽 오브 데스티니'의 한 장면.
영화 '테네이셔스 디 인 더 픽 오브 데스티니'의 한 장면.

지난 주말 테네이셔스 디의 내한공연에 다녀왔다. 할리우드 코미디 배우 잭 블랙(45)이 결성한 록 듀오다. 소문만큼이나 라이브가 대단했다. 불세출의 로커 로니 제임스 디오에게 겁도 없이 “당신은 이제 늙었으니 횃불을 우리에게 넘기라”고 노래하는 이 밴드가 표방하는 장르는 록도 아니고 하드록도 아닌 헤비메탈이다. 공연 도중 블랙이 외쳤다. “내년 그래미 시상식 후보에 올랐는데 어떤 부문인지 아는가. 코미디가 아니다. 바로 메탈이다. 크하하하.”

테네이셔스 디는 들어본 적도 없고 잭 블랙이 흑인배우인 줄 알았다는 한 지인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로 꼽은 것은 이들이 메탈이 아닌 재즈를 연주할 때였다. 테네이셔스 디의 나머지 절반 카일 개스(54)가 양손으로 피리 2개를 연주하고 잭 블랙은 노래를 하면서 행위예술에 가까운 쇼로 무대를 누볐다. 배불뚝이 중년 아저씨들이 초등학생처럼 재롱을 피웠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아 / 공간도 존재하지 않아 /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은, 재애~~~즈”라고 외치다 갑자기 밴 모리슨의 ‘문댄스’를 부르고 두 팔을 펄럭거리며 무대 위를 사뿐사뿐 걸어서 날아다녔다. 뒤에 앉은 남자가 연신 “아, 저 미친 XX”를 반복하며 박장대소했다. 옆에 앉은 여자는 실성한 사람처럼 웃다가 숨이 넘어갈 뻔했다. 원래 11분짜리 곡(‘심플리 재즈’)인데 6분 이내에 끝낸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테네이셔스 디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헤비메탈을 외치면서 재즈를 노래하다니. 이처럼 그들은 ‘잉여’ 같은 일에 에너지를 아끼지 않는다. 자신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제작한 건 그 중에서도 가장 잉여스러운 일이다. 제목부터 거창하다. ‘테네이셔스 디 인 더 픽 오브 데스티니’. 로커가 되기 위해 가출한 잭 블랙이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카일 개스와 밴드를 결성한 뒤 위대한 밴드들만 쓴다는 기타 픽을 박물관에서 훔치기 위해 떠난다는 것이 영화의 내용이다. 제목 ‘더 픽 오브 데스티니’는 문제의 기타 픽을 가리킨다.

● 영화 ‘테네이셔스 디 인 더 픽 오브 데스티니’ 중 ‘파파게누’ 장면

바보 콤비의 로드 무비인 이 영화는 잭 블랙의 친구이자 너바나 출신으로 푸 파이터스를 이끌고 있는 데이브 그롤을 비롯해 벤 스틸러, 팀 로빈스, 로니 제임스 디오, 존 C. 라일리, 미트 로프 등 화려한 카메오를 자랑한다. 흥행 성적도 화려했으면 좋으련만 2,000만달러(약 22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고작 800만달러를 회수하는 데 그쳤다. “2006년에 나온 영화 중 가장 웃긴 작품 중 하나”라는 호평과 “테네이셔스 디 마니아들만을 위한 영화”라는 악평이 반반으로 나뉘었다.

둘 다 옳은 말이다. 한국에 개봉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이 영화는 웃기긴 하지만 엉성하고 조잡하다. 방귀 가스로 비행을 하는 오프닝 애니메이션부터 잭 블랙이 성기를 발기시켜 방범 해제 버튼을 누르는 황당한 엔딩까지, 미국식 화장실 유머가 가득하다. 한심하고 지저분하며 멍청해 보이지만 잭 블랙의 팬들에겐 한없이 귀여울 뿐이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인 동시에 테네이셔스 디의 정규 2집인 이 앨범엔 2곡을 빼면 모두 3분 미만의 짧은 곡들로 채워져 있다. 뭘 하든 장난처럼 보이지만 허투루 만든 앨범은 절대 아니다. 잭 블랙이 버섯을 먹고 환각에 빠져 바야바처럼 생긴 털복숭이와 뛰놀며 부르는 ‘파파게누’는 이 영화의 백미 중 하나고 ‘픽 오브 데스티니’의 앞 글자를 딴 ‘포드’(Pod)는 잭 블랙이 영화의 요점만 추려 화끈하게 질러대는 데 후렴구의 중독성이 꽤 강하다.

● 테네이셔스 디의 ‘Pod’

제일 마음에 드는 곡은 영화가 끝난 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오는 ‘더 메탈’이다. 노래의 요점은 이렇다. 헤비메탈은 죽지 않는다는 것. 펑크록도 뉴웨이브도 그런지도 테크노도 메탈을 없애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으니 까불지 말라고 일갈한다. 헤비메탈의 시대는 갔다고 하지만 잭 블랙에겐 안 통하는 소리다. 그에겐 아직도 10대 시절 들었던 레드 제플린, AC/DC, 더 후, 블랙 새버스가 영웅이다. 세상의 모든 철부지들에게 잭 블랙이 영웅인 것처럼. 그도 언젠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바보들의 왕자가 되기보다는 꼬마들의 왕이 되고 싶다”고.

고경석기자 kave@hk.co.kr

테네이셔스 디의 ‘The Me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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