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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도] 금융권 ‘신한 독주’의 교훈

입력
2014.12.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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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성 악화에 허덕이는 요즘 금융권에서 신한금융지주 계열사들의 독주는 단연 돋보인다. 지난 3분기 신한금융의 순이익은 6,320억원. KB금융(4,562억원), 하나금융(2,944억원), 기업은행(2,338억원), 우리금융(1,810억원), 농협금융(1,780억원) 등 경쟁사들을 멀찌감치 따돌린 압도적 1위였다.

3분기까지 누적 순이익(1조7,680억원)을 감안하면 올해 순이익도 2조원을 넘길 것으로 보여 현재로선 2008년 이후 굳게 지켜온 금융권 최고 순이익 기록을 7년째 이어갈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경기를 따라 함께 오르내리던 금융지주사들의 실적이 언제부턴가 완연히 차별화되면서 금융권에선 ‘신한 대 비신한’의 경쟁이라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다.

신한금융을 안팎에서 지켜봐 온 인사들은 이런 독주의 비결로 신한 만의 조직문화를 꼽는다. 웬만해선 반칙과 청탁을 허용하지 않는 인사 문화, 철저히 능력으로 직원을 가르는 성과주의가 오늘날 신한 독주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해 보이는 경영 원칙이지만 외풍이 심한 금융계에서 이를 고유의 문화로 정착시키기까지 신한의 노력은 치열했다.

신한의 인사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라응찬 전 회장의 일화다. 군부의 서슬이 퍼렇던 전두환 정권 시절, 라 전 회장은 당시 군부 핵심 사령관의 인사청탁을 거부했다. 더 센 윗선을 이용했다는 후문도 있지만 어찌됐던 청탁사실까지 사내에 공개해 결국 해당 직원이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난 사실은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진다.

라 전 회장이 1999년 신한은행장을 물러난 계기도 인사 압력 때문이었다. 퇴출된 동화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정권 실세의 부탁을 받은 금감위원장이 반강제로 동화은행 출신을 지점장으로 천거하자 마땅한 거절 방법을 찾지 못한 라 전 회장은 사표를 던졌다. 당시 주주들에게 그가 밝힌 사퇴 이유는 “인사 압력을 막으려면 내가 물러나는 수밖에 없겠다”는 것. 임원도 아닌 지점장급 청탁 거절을 위해 행장 자리를 내놓는다는 것은 지금으로도 잘 상상이 되지 않는 결기다.

신한금융의 한 전직 임원은 이런 경험도 전했다. “처가가 있는 경주의 작은 지점에서 똑똑한 대출 담당 직원을 눈여겨 봤는데, 나중에 신한에 들어와보니 그 직원이 대구 본부를 거쳐 서울 본점의 영업부에 근무하고 있더라. 이후엔 결국 부산의 신설 지점장으로 발탁됐다.” 공무원으로 치면 시골 주민센터 직원이 능력 하나로 중앙부처 간부까지 오른 셈이다.

금융감독당국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신한의 선전을 두고 “금융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배경과 연줄보다 성과로 말하는 문화가 전 조직원 사이에 뿌리내린 결과, ‘신한 사태’ 같은 큰 사건을 겪어도 일선 영업조직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는 것이다.

비록 금융지주사 최고위층 간의 볼썽 사나운 권력다툼을 부른 인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라 전 회장이 닦아 놓은 조직문화 덕에 신한금융은 올해 대다수 은행들의 발목을 잡은 모뉴엘, KT ENS 같은 사기사건에서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로 화를 면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출신 최고경영자(CEO)들에 가려 덜 주목 받고 있지만 최근 각 금융사에 임원으로 앉는 정치권 인사들은 모두 능력과 관계없는 연줄과 청탁의 결과물이다. 변변한 금융권 경력도 없이 수많은 부하직원을 부리는 자리에 앉아 이들이 조직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누군들 받고 싶어 받겠냐”고 하겠지만 라 전 회장 정도의 각오가 없다면 조직은 그만큼 망가지는 셈이다. ‘한번쯤이야’ 하는 생각으론 오랜 세월 다져 온 신한과 같은 문화를 만들 수 없음도 자명하다.

곧 금융당국이 만든 ‘금융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이 시행된다. 이는 CEO와 임원의 자격요건을 미리 살피고 엄정히 심사해서 뽑도록 하고 있다. 법까진 아니어서 꼭 지키진 않아도 되는데, 지키지 않을 경우 합당한 설명을 공시해야 한다. 지금 같아선 앞으로도 계속 정치권에서 낙하산은 날라올 기세다. 이들에 대해 금융사들이 어떤 설명을 내놓을지 자못 궁금해 진다.

김용식 경제부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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