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수성 근위축증에 침대 누워 참가...하루 7~8시간 연습해 전 종목 도전
IT대회 4년 연속 최우수상 실력..."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 꿈꿔요"
“나뭇잎이 시냇물을 타고 흘러가 큰 바다를 만날 때가 포인트에요. 그 순간을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해 주세요.”
한-아세안 장애청소년 글로벌 IT챌린지 대회가 열린 11일 부산 벡스코 제2전시장. 대회 단체전 부문에 참가한 한국ㆍ아세안 11개국 104명의 장애 청소년들이 대회 과제를 해결하느라 여념이 없다. 희귀 난치병인 척수성 근위축증을 앓고 있는 박종우(17)군. 얼굴과 왼손 검지 손가락 외에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박군은 침대에 누운 채 대회에 참가했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전체적인 작업 진행을 조율했다.
이날 단체부문 과제는 ‘IT챌린지 홍보용 애니메이션’ 만들기. 장애 청소년 5명과 함께 ‘한국 5팀’에 편성된 박군이 전체 시나리오를 제안했고 팀원들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작업에 돌입했다. 시냇물에 떨어진 많은 나뭇잎들(장애인)이 갖은 어려움을 겪은 끝에 큰 바다(IT세계)에서 만난다는 내용을 애니메이션에 담았다. 박군은 특히 12일 전 참가자들 앞에서 영어로 작품을 설명하는 프리젠테이션까지 한다.
박군이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서울 우진학교(장애인 특수학교) 2학년때부터다. 컴퓨터공학 전공인 담임 교사의 추천으로 처음 컴퓨터 마우스를 잡았다. 대회 출전을 위해 하루 7, 8시간 이상 컴퓨터와 씨름하다시피 했다. “어렸을 때부터 외출하기 어려워 집에서 지내다 보니 바깥 세상 일이 궁금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전세계 어디든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어 금세 흥미를 느꼈습니다.”
박군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서울 IT경진대회 파워포인트 분야 최우수상을 휩쓴 실력자다. 2012년에는 글로벌 IT챌린지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번 대회에서도 주종목인 파워포인트 뿐 아니라 정보 검색, 스크래치(게임 제작 프로그램 운용), 단체전 등 4개 종목에 모두 출전했다. 마우스조차 제대로 움직이기 어려운 박군이 대회 전 종목에 도전한 것은 처음이다.
컴퓨터 학습을 통해 얻은 것도 많다. 소극적이고 낯가림이 심했는데, 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내면서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최근에는 아버지와 대형마트에 장을 볼 정도다. 박군의 어머니 이순희(49)씨는 “각종 대회 출전을 통해 자신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했다.
장래 희망은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다. 그래서 대학 진학을 위해 수능 준비에 열심이지만 쉽지 않다. 누워서 손을 쓰지 않고도 고교 수학 문제를 풀 정도지만 우진학교의 교과과정은 정식 교육과정으로 인정되지 않아 입시 자격이 주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행사를 주최한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이상철 회장은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며 “한국뿐 아니라 아세안 개발도상국 장애인의 권리 신장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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