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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자살과 손톱

입력
2014.12.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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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을 관통하는 템즈강에 놓인 많은 다리 가운데 배가 지날 때면 다리를 들어 올리는 다리, 곧 세계 최초의 도개교로 설계된 타워브리지가 가장 유명하다. 런던브리지로 더욱 알려진 타워브리지는 19세기 말에 세워진 이래 항구도시 런던의 상징이 됐지만 자살의 명소이기도 하다. 특히 겨울이면 이 다리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이가 많다고 전한다. 추운 겨울에 익사한 시신을 찾아 강물에서 건져 올리는 작업은 고역이었을 것이다. 시신을 끌어 올리는 이들은 자살의 원인을 대개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그 비결은 간단했다. 손톱만 확인하면 됐다.

손톱이 멀쩡한 자살자는 채무 등 경제적 문제가 원인이고 손톱이 망가진 자살자는 대개 기타 원인이란다. 손톱이 멀쩡한 시신은 대체로 물속에서 몸부림 흔적도 없고 손톱이 망가진 시신은 몸부림치다 몸과 옷이 헝클어진 경우가 많다고 전한다. 추운 겨울날 물속에 몸을 던져도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살아봐야 고단한 삶이 달라지지 않을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일 게다. 이성문제 등의 고민으로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차가운 물속에 들어가면 정신이 번쩍 들어 살기 위해 교각을 잡으려고 발버둥 치다 손끝이 다 망가졌다는 풀이다. 실연 등으로 인한 일시적 흥분이나 격정으로 인한 고통은 채무 등 경제적 문제와는 비교하기 힘든 것임을 실감하게 해주는 예다.

자살률에 관한 한 세계최고 수준인 우리의 경우 자살충동의 원인은 나이와 성별 등에 따라 다르지만 경제적 어려움, 이성문제, 질환, 불화, 고독, 진학과 직장문제 등이 공통적으로 꼽힌다. 이들 가운데 진학과 학업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10대를 제외하면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물론 경제적 어려움이다. 큰딸의 만성 질환과 어머니의 실직으로 인한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갖고 있던 전 재산인 현금 70만원을 집세와 공과금으로 놔두고 번개탄을 피워 자살한 송파 세모녀가 남긴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 전셋집에서 쫓겨나게 된 65세 노인이 자기의 시신을 수습할 사람을 위해서 “개의치 말고 국밥이라도 사드시라”고 10만원을 봉투에 넣어두고 목을 맸다는 소식, 부모의 잘못된 선택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다 동반 자살한 가족의 열두 살 딸의 유서에 “우리 가족은 영원히 함께 할 것이기에 슬프지 않다”고 적은 뒤 직접 그린 자신의 얼굴과 담임교사의 연락처도 남겼다는 보도가 가슴을 울린다. 이들에 대한 언론의 설명은 한결같이 “착한 사람, 양심적인 사람들이었다”로 돼 있어 사고의 원인을 사회구조적인 것에서 선량한 개인이기에 당한 것 정도로 호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패자부활전은 커녕 최소한의 기초적 보장도 되지 않는 우리의 민낯은 최근 여러 경로로 드러나고 있다. “직장 안은 전쟁터, 밖은 지옥” 등 잠언과도 같은 숱한 명언, 명장면을 남기고 있는 미생의 인기는 TV 속의 드라마에서 우리네 고단한 현실을 생생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팍팍한 삶을 다룬 영화 카트에의 높은 관심도 역시 같은 이유로 여겨진다.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하다는 사실은 대표의 폭언, 고성, 인격 모독으로 인해 진행 중인 서울시향 사태와 로열패밀리 출신 부사장의 안하무인 막장드라마 같은 행동으로 인한 ‘땅콩 리턴’이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막장드라마에 나와도 현실감 없다는 비판을 받을 만한 일들이 우리나라 한복판에 세계적 수준으로 지어진 공연장 건물 안에서 이뤄지고 있었고 첨단기술과 최고 수준의 인력관리를 자랑하는 국적항공사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라면상무와 남양유업의 갑의 횡포로 인한 봇물과도 같은 비난이 어제 같은데 현실은 막장드라마에서 한 발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니 안타깝다. 미생을 함께 본 중3 딸의 “죽어라고 공부해서 저런 짓이나 하려고”라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오래 전 친구와 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하던 중 긴급조치 뉴스를 접한 어느 원로 시인이 술을 몇 병 더 시켜 마시는 일 외에 할 일이 없었다는 글을 읽은 적 있다. 극도의 충격과 무력감 때문이리라. 존경하는 원로시인 덕에 술 핑계가 생겼다. 오늘은 무슨 술이 좋을까?

김상엽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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