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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노동정책 논의에서 놓치고 있는 것

입력
2014.12.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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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처가 고용노동부나 노사정위원회와의 협의 없이 노동정책에 관한 견해를 발표하면서 정규직에 대한 고용 보호 법제 및 인력 재배치에 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마치 경제 회복에 실패한 자신의 정책적 실수를 덮기 위한 희생양을 찾는 것처럼 느껴져 안타깝다. 숱한 돈을 쏟아 부었는데도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1차적 이유는 경제 시스템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건 정규직의 해고가 어려워서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은 1953년 제정 이래 계속해서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고용 보호 법제 아래에서 한국은 70, 80년대 고도 경제성장을 이뤘고 90년대의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노동법이 경제성장을 이룬 것이 아닌 것처럼, 노동법이 현재의 경기침체를 불러온 것도 아니다. 정부가 정규직의 해고가 어렵다고 거론하는 예는 일부 대규모 사업장의 사정에 불과하다.

고용 보호 법제는 헌법상 기본권인 근로의 권리에 기초한 입법이다. 헌법에 따르면 국가는 사회적ㆍ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 증진에 노력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근로조건의 기준을 법률로 정해야 한다. 근로자에게 일자리는 단순히 소득을 얻는 곳이 아니라 인격 발현의 기회이다. 근로자는 고용을 통해 사회적으로 통합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근로자가 부당하게 고용으로부터 배제되는 걸 막는 고용 보호 법제는 정당화된다. ‘땅콩 회항’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사용자가 항상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의 인사권 전횡으로부터 근로자의 고용은 보호돼야 한다.

정규직 인력 운용에 유연성과 합리성이 필요하다고 하며, 업무 성과가 낮은 정규직의 재배치가 가능한 룰을 만든다는 정부 계획도 조금 생뚱맞다. 정부의 얘기를 듣다 보면 마치 현재는 그런 인력 재배치가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래 전부터 법원은 “기업 내 인력 재배치 권한은 원칙적으로 사용자의 권한에 속하고 업무상 필요한 범위에서 상당한 재량권을 갖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법리를 이용해 90년대 후반부터 기업은 업무 성과가 낮은 근로자에 대한 인력 재배치와 이를 이용해 퇴직을 권고하는 방법, 즉 사직을 권고한 후 이를 거부하면 낮은 직위 또는 후선 업무로 재배치함으로써 퇴사를 압박하는 ‘간접적 고용조정’ 방식을 통해 구조조정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 1년 만에 5만 명이 퇴출된 금융ㆍ보험업의 구조조정 역시 정리해고가 아닌 간접적 고용조정 방식을 통해 이뤄졌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같은 간접적 고용조정 과정에서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고용 보호 법제에 관한 논쟁에서 드러나듯 정부의 노동정책은 일부 대규모 사업장에 주목하고 있다. 이 점은 특히 경제부처가 제시하는 노동정책에서 두드러진다. 해당 기업으로선 정부 정책이나 입법을 통해서라도 자신들의 노무관리상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곳은 스스로의 어려움을 호소할 여유조차 없는 사업장과 그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다. 국가의 법과 정책은 몇몇 대규모 사업장이 아니라 저임금을 받으며 장시간 일하는 소규모 사업장의 수많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져야 한다.

임금 소득의 총량을 확대해야 한다는 정책적 의지가 약한 점도 아쉽다. 정부 대책에선 외환위기 이후 확대된 임금 소득과 기업 소득의 격차에 대한 문제의식, 그것을 시정하려는 정책적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한국의 임금소득분배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정부는 현재의 격차를 고정불변의 것 또는 신성불가침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러나 전체 소득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몫을 줄이고 임금 소득을 늘리지 않는 한 우리 경제가 겪는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좀 더 큰 틀에서 기업과 근로자 간 소득 격차를 줄이려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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