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 본부 애드리럴티 지역..바리케이드·텐트 등 철거
시위 75일만에 사실상 마무리
홍콩인들 정치적 각성 불러일으키고 조슈아 웡 등 새로운 정치 세대 부상
홍콩 민주화 시위대 본진의 바리케이드와 텐트 등이 11일 철거됐다.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후보를 친중국 애국 인사로 제한한 중앙 정부에 반발해 일어난 홍콩의 ‘우산혁명’은 결국 75일만에 사실상 우산을 접었다. 그러나 정치에 눈을 뜬 학생들의 민주화 열정은 홍콩의 미래를 바꿀 것으로 보인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 중국 매체 등에 따르면 홍콩 경찰과 법원 집달관, 인부 등은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그 동안 시위대의 본부 역할을 해 온 애드미럴티(金鐘) 지역의 철제 바리케이드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바리케이드 위에 내걸린 ‘이제 시작일 뿐이다’는 글귀의 천막과 곳곳의 우산도 내려졌다. 당국은 시위대를 향해 홍콩 고등법원의 ‘점거 해제 명령서’를 통지한 뒤 점거 지역에서 떠나지 않을 경우 체포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철거 작업 주변에는 모두 7,000여명의 경찰관이 배치됐다. 일부 시위대는 “유혈 충돌을 바라지 않는다”며 자진 철수했다. 그러나 수백명의 학생과 시민은 “체포될 때까지 이 곳을 지키겠다”며 연좌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일부가 경찰에 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관영 언론들은 이날 홍콩 당국의 바리케이드 철거가 정당한 법 집행임을 강조하며 시민들이 크게 환영했다는 데 초점을 둬 보도했다. 관영 CCTV는 “불법 점거가 장기화하면서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고 홍콩 경제도 타격을 입었다”는 한 시민의 목소리를 전했다.
지난 9월28일부터 학생들이 중심이 된 홍콩 민주화 시위는 한때 참가자 수가 수십만명으로 추산되며 톈안먼 민주화 운동 후 가장 큰 정치적 저항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통일된 지휘부와 구체적인 전략ㆍ전술 등이 없어 성과를 내기엔 한계가 있었다. 중앙 정부는 ‘일국양제’(一國兩制ㆍ한 나라 두 체제)의 ‘일국’만을 강조하며 강경한 태도로 일관했다.
시위대 요구가 수용되지 않고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시민들 지지는 약해졌고 시위대 규모도 수백명 수준으로 줄었다. 지난달 몽콕(旺角) 지역의 바리케이드가 철거되고 이달 초 ‘센트럴을 점령하라’운동을 처음 제안한 교수들도 자수한 데 이어 이날 시위 중심지였던 애드미럴티의 바리케이드까지 철거되며 시위는 사실상 마무리됐다.
그러나 홍콩인의 정치적 각성을 불러일으켰다는 데 대해선 절반의 성공이란 평가도 나온다. 렁쿽훙(梁國雄) 사회민주연선 주석은 “중국공산당이 1989년에는 탱크와 기관총으로 톈안먼(天安門)을 진압했지만 이번엔 똑 같은 방법을 쓸 수 없었다”며 “우린 실패한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전날 밤 애드미럴티 지역엔 수천명의 시위대가 집결, 시위가 언제든 재현될 가능성도 보여줬다. 이들은 곳곳에 ‘우린 돌아올 것이다(We will be back)’는 대자보를 남겼다. 아스팔트 도로 위엔 ‘바리케이드를 철거할 수 있을 진 몰라도 민주화에 대한 생각과 열정까지 철거할 순 없을 것’이란 글귀도 보였다. 새로운 정치 세대의 부상도 주목된다. 중고생 대표인 조슈아 웡(18)과 대학생 대표인 알렉스 차우(24)는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은 정부를 거부한다”며 “완전한 직선제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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