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화가 김준권 '나무에 새긴 30년' 회고전
목판 전통 살리기 노력 한눈에
서울 견지동 아라아트센터 3층 한 켠에 한 판화가의 작업실이 재현돼 있다. 목판과 조각칼, 유성 판화를 찍기 위한 롤러도 있지만 작업실 가운데 탁자에 놓인 화선지, 먹, 붓 그리고 인체(印體ㆍ문지르개)가 눈에 띈다. 판화가 자신이 '조선의 판화'라 부르는 수묵 목판화를 찍기 위한 준비물이다. 이 작업실의 주인공은 목판화가 김준권이다.
김준권의 '나무에 새긴 30년' 회고전이 아라아트센터에서 12월 29일까지 열린다.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며 미술을 시작한 그의 초기 유화부터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한 최근의 수묵 채색판화까지 김준권 작가가 매 해 찍어온 대표 판화들이 모두 전시돼 있다. 그는 사라진 판화에 대한 관심을 되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 "전시를 하면 다들 이런 작품을 처음 본다고 해요. 저는 이 작업을 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말입니다."
전시장 5층에는 김준권의 초창기 유화가 걸려 있다. 그는 목판을 만나기 이전에도 이미 장준하, 조만식, 전봉준 등 민중과 민족주의를 상징하는 인물들을 소재로 삼았다. 그의 '5월 광주' 그림이 당시 제5공화국 정부의 제재를 받자 그는 자연스레 민중미술운동과 판화 작업에 뛰어들었다.
이렇게 시작한 목판이 지금은 그의 운명이 됐다. 1990년대부터 한국의 농촌과 산하에 눈길을 돌려 풍경을 판화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1994년에 중국 수인(水印)판화 기법을 배우기 위해 선양 루쉰미술전문대로 유학하는 등 목판화를 찍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했다. 그는 "한국은 세계유산인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을 정도로 목판의 역사가 깊은데 어느새 계승되지 못하고 잊혀져 버렸다"고 아쉬워했다.
김준권이 밝힌 수묵 목판화의 작업 과정은 길고 까다롭다. 기본적으로 판화 한 장을 찍기 위해서는 최소 5, 6판이 동원되는데 수성 판화는 한 판을 찍을 때마다 종이가 마르길 기다려야 하기에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판마다 먹의 농담도 다르다. 먼 곳의 풍경은 은은하게, 가까운 나무는 진하게 표현한다. 판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찍는 방법이기에 판화가 아닌 '인화(印畵)'라 부른다. "유성 판화는 판에 따라 그림의 내용이 결정됩니다. 수성 판화는 그렇지 않아요. 붓으로 물감을 칠하니 찍히는 부위와 강도의 조정이 가능합니다. 판과 종이가 물에 젖은 정도도 조절해서 찍으면 표현을 달리할 수 있죠."
김준권은 유성과 수성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판화를 만들어 왔다. 진하고 분명하게 표현해야 할 판화는 유성으로, 은은하고 부드럽게 표현해야 할 판화는 수묵으로 찍었다. 그는 "유성 판화가 산문이라면, 수성 판화는 운문"이라 표현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 것'이라 생각하는 수묵 판화에 더 많은 애착을 보였다. "우리 민중을 생각하다가 우리 산하를 보게 됐고 우리 판화를 하게 됐습니다. 한국 전통에서 끌어낸 제 판화가 세계로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