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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10년 소송 중소기업, 대법서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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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10년 소송 중소기업, 대법서 이겼다

입력
2014.12.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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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자회사인 로지텍과 계약, 카자흐 등에 휴대폰 운송하던 우진

삼성 지사장 지시 따라 도착지 변경, 지사장들 알력 탓 "차액 노려" 누명

삼성전자 내부 알력 다툼으로 휴대폰 수출 운임비를 떼이고 도리어 손해배상할 처지에 몰렸던 중소기업이 법정 공방 끝에 운임을 받을 길이 열렸다. 운임 3억원을 받기 위한 다툼에 꼬박 10년이 걸렸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국제화물운송업체 우진트랜스(이하 우진)와 삼성전자의 물류대행 자회사인 삼성전자 로지텍(이하 로지텍)이 각각 상대방에게 낸 운임 및 운임반환 소송에서 로지텍의 상고를 전부 기각하는 한편 “우진이 로지텍에 8억1,000여만원을 지급하라”는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고 11일 밝혔다. 2005년 소송이 제기된 이 사건은 대법원 심리만 7년이 걸렸다.

우진은 1999년부터 로지텍과 계약을 맺고 러시아 및 카자흐스탄 등 독립국가연합 소속 국가들에 삼성전자의 제품 운송업무를 맡았다. 2002년 삼성전자가 카자흐스탄 현지 수입업체 M사와 손을 잡은 후부터 휴대폰 수출 물량이 급증했다. M사가 알마티까지의 운임을 포함한 휴대폰 값을 삼성전자에 지급하면 다시 로지텍이 우진에 운송비를 전달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와 카자흐스탄 사이 정기 항공편이 주 1회뿐이어서 물량을 감당하지 못하자 삼성전자 알마티 지사장이던 정모씨가 “정기편에 못 싣는 물량을 두바이 및 홍콩으로 보내면 M사가 현지에서 수령할 것”이라며 우진 측에 화물 도착지를 변경하라고 지시했다.

우진 측은 “삼성전자는 로지텍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고, 당연히 삼성의 현지 책임자인 정씨의 지시를 따랐다”고 했다. 이에 따라 2003년 6월부터 2005년 5월까지 휴대폰 121만5,851대를 두바이와 홍콩으로 운송했다.

문제는 M사로 수출된 일부 휴대폰이 두바이 시중에 풀리면서 불거졌다. 영업압박을 받던 두바이 지사가 고유번호를 확인, 카자흐스탄으로 판매된 휴대폰이 두바이에서 유통된 것으로 드러나자 내부고발을 했고 정씨와 우진이 운임 차액을 노리고 공모했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 해외 지사장들간의 경쟁 및 알력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로지텍은 우진에게 2005년 4월부터 두 달 간 152회에 걸쳐 운송한 운임 약 3억원을 지급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삼성전자 지사장의 말만 따랐던 우진 측이 소송을 냈지만 로지텍은 오히려 “우진이 휴대폰을 엉뚱한 곳에 운송하면서 발생한 운임 차액 24억여원을 반환해야 한다”는 반소를 제기했다.

1,2심은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1심은 “우진의 계약당사자는 삼성전자가 아닌 로지텍”이라며 “로지텍의 승인 없이 도착지를 변경했으므로 24억여원을 우진이 반환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우진이 (물량을 알마티로 운송하지 않아) 로지텍에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며, 다만 국제협약에 따른 반소제기 시점 제한 등을 감안해 “로지텍에 8억1,000여만원만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도착지 변경으로) 로지텍이 손해를 입었다고 본 원심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며 “우진에 지급된 운임은 운송계약에 따른 것이며 운임 차액도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과정에서는 삼성전자 내부의 과열 경쟁이 중소기업으로 불똥이 튄 정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정씨는 “2004년 알마티 수출 물량은 70여만대였지만 현지 소화물량은 59만여대에 불과했다”며 “삼성전자가 역외유출을 사실상 묵인해 왔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알마티 휴대폰 매출은 2002년 1,480만달러에서 2004년 1억1,331만달러로 8배 가까이 급증해 현지시장에서 노키아, 모토로라를 제치고 점유율 1위(33%)로 올라서며 약 5,700만달러(약 628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삼성 측이 별도로 정씨를 고소한 형사소송에서도 서울고법은 정씨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했지만 우진과의 운송료 차액에 대한 사기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정씨가 실적 향상을 위해 무리하게 영업을 추진하면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삼성전자의 직ㆍ간접적인 책임도 있다”고 지적했다.

1심 패소 후 우진을 폐업해야 했던 원고 박연섭 대표는 “초대형 기업 삼성에게 푼돈에 불과한 3억원 때문에 10년을 싸우면서 너무 괴로웠다”며 “파기환송심에서 또 다투기보다 삼성이 우리나라 일류기업답게 적폐를 깨끗이 털고 가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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