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추억의 반추 - 정도전ㆍ명량 인기
2. 새 도서정가제 - 기대 반 우려 반
3. 자본론 귀환 - 마르크스 해설서 열풍
4. 여행서 변신 - '꽃보다...' 붐 타고
세월호 참사에서 여실히 드러났 듯 올해 한국 사회는 리더십의 실종을 뼈저리게 겪었다. TV 드라마 ‘정도전’과 이순신 장군 영화 ‘명량’의 인기는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대중의 갈망을 반영했고, 이는 관련 서적들의 출판으로 이어졌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펴내는 격주간 출판전문지 ‘기획회의’는 5일 발행한 381호의 송년 특집 ‘2014 출판계 키워드 30’에서 이런 현상을 ‘추억의 반추’로 명명하며 올해 출판계 최고 화두로 꼽았다. “내남없이 먹고 살기 힘든 현실을 견디며 역사적 인물을 자신만의 영웅으로 만들어 새로운 살 길을 찾길 원했던 것”으로 해석했다.
만화가 원작인 화제의 TV 드라마 ‘미생’도 주인공 장그래가 바둑의 추억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점에서 이 범주에 속한다. 개인이 아닌 집단적 추억으로서 역사를 반추한 소설로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성석제의 ‘투명인간’이 독자들에게 받은 호응 역시 추억은 힘이 세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추억의 반추’에 이은 키워드 2위는 ‘도서정가제 개정’이 꼽혔다. 신구간 가릴 것 없이 국내에서 나오는 모든 책의 총할인율 한도를 15%로 묶은 새 제도가 11월 21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가격 경쟁이 아닌 콘텐츠 경쟁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와, 여전히 허점이 많아서 제구실을 못할 거라는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키워드 3위는 ‘자본’의 귀환이다. 마르크스의 유령이 출판계를 배회하고 있다. 마르크스 ’자본론‘ 해설서가 쏟아졌고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최고의 화제작이 됐다. 새 정권이 들어선 지 2년이 지나도 나아지긴커녕 갈수록 심해지는 애옥살림에 이 시대 자본주의의 위기를 체감한 독자들이 마르크스를 다시 불러낸 것으로 보인다.
4위는 ‘여행서의 변신’이다. tvN의 예능 드라마 ‘꽃보다 ○○’ 시리즈의 인기는 여행서 분야에 ‘꽃보다’ 붐을 일으켰다. 단순 가이드북을 넘어 권역별, 테마별 여행서가 쏟아지는 가운데 휙휙 지나치기보다 머물면서 느끼는 ’느린 여행‘에 관심이 커지면서 백과사전식 지식의 나열보다 저자의 체험이 녹아든 고도의 스토리텔링 여행서가 각광을 받았다. 유흥과 소비를 넘어 ‘작은 유학’ 같은 여행에 대한 대중의 욕구에 반응해 여행서의 깊이도 달라졌다. 정여울의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은 젊은 감각의 여행서이면서 수려한 문장에 인문학적 향기까지 갖춰 베스트셀러가 됐다.
잡지의 특징과 장점을 적극 수용한 단행본이 뛰어난 완성도를 보이며 새로운 가능성을 연 것도 올해 출판의 큰 특징이다. 키워드 5위로 ‘잡지와 단행본 사이’가 꼽혔다. 만화가의 일상과 작품을 절묘하게 직조해 예술적 편집을 보여준 ‘MANAGA’, 글 없이 사진만으로 모든 페이지를 채우면서 대신 제목과 카피, 저자 프로필과 서문 등을 활용해 책 자체의 기획 과정 자체를 스토리텔링으로 보여 준 ‘1년의 아침’ 등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키워드 10위권에는 한국 진출을 앞둔 세계 최대 인터넷서점 아마존, 불황에 가족의 가치를 환기시키는 아빠 관련 콘텐츠의 범람, 글쓰기에 관한 책들의 홍수, 외국문학의 강세에 눌린 한국문학의 정중동, 직접 하는 진짜 공부 또는 함께하는 공부에 관한 공부책 열풍이 들어갔다.
아마존의 한국 상륙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들어올 것인가만 남았다. 아마존은 한국에서 전자책 분야에 일단 집중할 것으로 보여 국내 관련 업체에 큰 영향을 끼치며 시장 지형을 뒤흔들 전망이다.
글쓰기에 관한 책 열풍에는 SNS의 영향도 있다. 눈 뜨자마자부터 잠들 때까지 뭔가 쓰지 않으면 소통할 수 없고 소외되는 현상이 글쓰기를 권력으로 만들었다. 글쓰기의 기초부터 실용까지, 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독자 맞춤형 책들이 쏟아졌다.
올해 한국문학의 정중동은 경장편소설의 연이은 출간이 가장 두드러진다.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 팟캐스트, 오프라인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진 것도 올해의 주요 풍경이다.
공부책 열풍은 인문학 열풍에 이은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인기 강연자의 강의를 들었던 사람들이 직접 공부를 시작하면서 참고할 만한 입문서를 찾기 때문이다. 함께 공부하기 모임인 숭례문학당 신기수 당주는 이번 특집에 쓴 글에서 “아직은 강연을 통해 힐링하려는 ‘소비자’가 많지만, 독서모임이나 공부공동체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가치, 주관으로 바로 서려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나머지 20개 키워드에는 세월호(‘눈 먼 자들의 국가’ , ‘416 세월호 민변의 기록’ 등), 올해 가장 많이 팔린 책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소설가 요나스 요나손, 어른들의 색칠놀이 컬러링북, 작가에게 불리한 불공정 출판 관행의 사례로 지적된 그림책 ‘구름빵’ 논란, 알베르 카뮈의 권위자 김화영 교수가 낸 기존 번역이 오역투성이라는 주장으로 한참 시끄러웠던 ‘이방인’ 번역 논란 등이 포함됐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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