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정 대표의 기업주의적 사고가 원인
사회 곳곳 기업주의 가치 다른 가치 압도
정명훈 감독 논란도 속 시원히 해명해야
직원이 대표를 고발하고, 대표는 의혹을 부인하며 배후를 지목하는 희한한 일이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일어났다. 이 유쾌하지 않은 일을 지켜 보면서 떠오른 것은 기업주의의 과잉과 음악인의 폐쇄적 사고다.
이미 보도됐듯 이번 사태의 발단은 서울시향 직원들이 폭언, 욕설, 성희롱, 인사 전횡 등을 일삼았다며 박현정 대표의 퇴진을 요구한 것이다. 직원들의 말처럼 박 대표가 “미니스커트 입고 다리로라도 음반 팔면 좋겠다” “술집 마담 하면 잘할 것 같다”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면 월급에서 까겠으니 장기라도 팔아야지”라고 한 것이 사실이라면, 어떤 이유에서건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말을 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박 대표는 자신의 언행을 두고 비판이 제기되자 기자회견을 자청해 “잘 해야 한다는 와중에 상처 받은 사람이 있었다면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의혹 일부를 시인하면서도 자신이 이끄는 서울시향을 방만하고 나태하며 비효율적인 조직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시향의 조직 문화는 보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서울시향이 나태하고 비효율적이며 동호회 같다는 박 대표의 생각은 확고한 것 같다.
박 대표가 그런 생각을 한 근본 배경을 살피기 위해서는 그의 이력을 다시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삼성화재해상보험에서 상무를, 삼성생명에서 전무를 역임했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여성으로서는 상당히 높은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가 몸담았던 그런 기업들은 성장과 효율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높은 자리에 오르며 그 기업 문화와 가치를 몸에 익힌 박 대표라면, 문화와 시스템이 전혀 다른 서울시향을 삼성과 비교했을 게 틀림없다. 그때 비교의 잣대는 앞서 언급한 효율, 성장, 생산성 따위일 텐데 그것으로 보자면 서울시향이 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박 대표가 강조한 가치 그 자체를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기업이 우선시하는 가치와 기준이 사회의 여러 영역으로 스며들어 다른 가치를 압도하고 혼란을 일으킨 사례는 적지 않다. 가령 두산그룹이 인수한 중앙대는 기업식 구조조정을 시도해 학문보다 기능을 우선시하고 학교를 취업양성소를 전락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공영방송 MBC는 기업식 성과주의를 공익에 앞세우고 그에 맞춰 무리한 인사를 단행해 심각한 내분에 빠져있다. 정부와 자치단체는 경쟁적으로 기업우대 정책을 내놓는다.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같은 문화기관에서도 기업인 출신 수장이 등장했고 마침내 기업인 출신 대통령까지 탄생했다. 사회에는 다양한 가치가 공존해야 하고 배려와 도움을 생산성이나 효율에 앞세워야 하는 분야도 많지만 어느덧 기업주의, 경제성장주의가 다른 가치를 압도해버린 것이다. 그런 현상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는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보여준다.
박 대표의 주장대로 서울시향 조직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그 조직에 문제가 많다는 것과, 그곳 사람들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게다가 박 대표의 언행 때문에 대립과 반목이 생겼다면 그것은 그가 강조한 효율과 근면의 가치마저 훼손시킬 수 있다.
이번 파문으로 음악계도 큰 숙제를 하나 받았다. 정명훈 감독이 받는 지나친 대우에 대한 해명이다. 정 감독은 이전에도 연봉을 너무 많이 받고 서울 체류기간이 1년에 3, 4개월 밖에 안 되며 개인 일정을 우선시한다는 등의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어찌된 일인지 음악계 인사 상당수는 정 감독 정도라면 그런 대우를 받아도 괜찮다는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음악계 바깥 일반인의 생각과는 차이가 크다. 음악인들은 외국의 이름난 지휘자들이 받는 대우를 언급하며 정 감독만이 유난스럽게 특별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라고 두둔한다. 또 그가 부임한 뒤 서울시향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발돋움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런 대답만으로는 일반인의 의구심을 해소할 수 없다. 정 감독과 서울시향의 직원 혹은 단원들은 보통사람의 궁금증을 음악 문외한들이 품는 치기 어린 의심이라고만 넘겨서는 안 된다. 음악인들이 자기들만의 폐쇄적 사고에 갇혀 일반인의 의문을 무시한다면 정 감독과 서울시향이 이룬 성과를 의심받을 수 있고 기업주의자의 역공도 받을 수 있다.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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