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정당방위 아니지만 정상 참작"
가족들에게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둘러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까지 받은 ‘폭력 남편’을 때려 숨지게 한 아내에 대해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폭행에 대해 재판부가 정당방위를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감경사유를 모두 받아들여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심규홍)는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40대 여성 A씨에 대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A씨는 1996년 남편 B씨와 결혼했지만, B씨는 결혼 이후 도박에 빠져 재산을 탕진했다. 심지어 그는 아내와 두 아들에게 칼이나 가위 등을 들고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하며 폭행까지 일삼았다. 이에 A씨는 지난해 4월 B씨와 협의 이혼했다. 그러나 B씨는 이후에도 A씨를 찾아와 폭력을 휘둘렀고, 법원은 지난 5월 A씨와 자녀들의 주거지나 직장, 학교 100m 내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B씨에게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B씨가 법원 결정이 나온 지 일주일 만에 작은 아들의 고등학교로 찾아가 “아들을 퇴학시키라”며 행패를 부렸다. 결국 A씨는 지난 5월 B씨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을 하다 프라이팬 등으로 B씨를 때려 숨지게 했고, 상해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A씨가 현장을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이 있었는데도 오히려 B씨를 공격했다”며 “정당방위로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A씨가) 접근금지 명령에도 아들의 학교로 찾아가 괴롭힌 B씨를 타이르려다 또 다시 폭언과 폭행을 당하게 되자 범행에 이르게 됐다”며 “A씨가 B씨의 폭행으로 시력장애 4급 진단을 받았고 이혼 후에도 자녀를 잘 보살핀 점 등을 고려했다”고 집행유예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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