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행정관·박 전 청장 등 대질조사 "그런 얘기 없어" 문건 신빙성 무너져
‘정윤회 동향 보고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대로 한낱 ‘찌라시’에 불과했던 것일까. 검찰이 문건 작성자와 제보자, 정보의 진원지로 지목된 인물 등을 상대로 ‘3자 대질조사’를 거쳐 “문건 내용은 허위”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지만, ‘비선실세의 국정 농단’이라는 정보의 최초 출처는 명확히 확인되지 않아 관심이 시들지 않고 있다.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48?전 청와대 행정관) 경정은 검찰에서 “박동열 전 대전국세청장한테서 정씨와 청와대 참모들의 회동 얘기를 들었는데, 그는 ‘모임 참석자인 김춘식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 행정관한테서 나온 말’이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박 전 청장과는 오래 전부터 정보를 공유해 왔고 대부분 믿을 만한 내용이었던 데다, 회동 멤버한테 들었던 내용이라니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박 경정이 주장한 문건 신빙성의 토대는 정보의 1ㆍ2차 출처인 김 행정관, 박 전 청장과 대질조사에서 쉽게 무너져 내렸다. 김 행정관이 “학교 선배인 박 전 청장과 가끔 연락하긴 하지만 그런 얘기는 하지 않았다. 모임의 실체도 없다”고 진술한 것은 물론, 박 전 청장마저 “김 행정관한테서 들은 것은 아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모임에 직접 참석했던 인사한테서 들었던 이야기라고 보고받았다”며 문건의 신빙성을 ‘6할 이상’이라고 주장했던 근거가 허물어진 것이다.
문제는 박 경정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김 행정관이나 박 전 청장이 검찰 조사에서 순순히 이를 인정했겠느냐는 점이다. 대통령이 “문건 내용은 루머”라고 단정한 상황에서 김 행정관이 “내가 말해준 게 맞다”고 할 리가 만무하고, 박 전 청장 또한 정보원인 김 행정관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 행정관이 문건 내용의 첫 출처가 아니라는 검찰 조사결과를 받아들인다면, 남은 가능성은 두 가지다. 박 전 청장에게 문건 내용을 전달한 제3자가 있거나, “시중의 풍문을 듣고 박 경정한테 전해 준 것뿐”이라는 박 전 청장의 진술이 사실일 가능성이다. 검찰은 이 가운데 후자에 무게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 어느 쪽이든 정보의 최초 출처를 밝히는 작업은 한계에 봉착했고, 문건의 실체는 ‘찌라시’ 수준이라는 쪽으로 규정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건에는 정씨가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퇴설을 정보지(찌라시)에 흘려 분위기를 조성하라”고 회동 참석자들한테 지시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실제로 김 실장이 조만간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소문은 지난해 연말 무렵부터 시중에 나돌았다. 검찰이 수사 의지만 있다면 이 풍문을 역추적하는 방식을 통해 문건의 실체를 규명할 수도 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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