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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입학 전에 1년간 내 적성과 재능 찾아요"

입력
2014.12.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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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원하는 250개 애프터스쿨… 목공, 건축, 축구 등 전공분야 달라

서른에 하고 싶은 일, 실행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설계해 보도록 제도화

아우레 애프터스쿨에서 인생을 설계 중인 재스민 에이체(왼쪽부터), 안드레아 브래튼, 엠마 로젠버그.
아우레 애프터스쿨에서 인생을 설계 중인 재스민 에이체(왼쪽부터), 안드레아 브래튼, 엠마 로젠버그.
덴마크 그룬투비 포크하이스쿨은 학생들에게 삶의 쉼표를 주는 것이 목표다. 지난달 24일 이 학교의 점심시간에 한 학생이 전교생을 향해 "2주 후 체스대회를 열 예정이니 많이 참가해 달라"고 말하고 있다. 힐레뢰드(덴마크)=정지용기자
덴마크 그룬투비 포크하이스쿨은 학생들에게 삶의 쉼표를 주는 것이 목표다. 지난달 24일 이 학교의 점심시간에 한 학생이 전교생을 향해 "2주 후 체스대회를 열 예정이니 많이 참가해 달라"고 말하고 있다. 힐레뢰드(덴마크)=정지용기자

덴마크의 항구도시인 오덴세의 아우레 에프터스쿨에 재학중인 안드레아 브래튼(16) 군은 올해 8월 이 곳에 처음 왔을 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해변에 있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카누를 타거나 수영을 즐기고 있었죠. 운동장에선 농구와 핸드볼 경기가 한창이었어요.”

9년 과정의 초ㆍ중등학교를 졸업하고 에프터스쿨에 입학한 안드레아는 매일 오후 2시 정규 수업이 끝나면 바다에서 요트를 타거나 암벽 등반 등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긴다. 오후 6시 방과 후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향후 진로를 생각한다.

이처럼 한국과 달리 덴마크에서는 학생들에게 인생을 설계할 시간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공부 부담 없이 자신의 재능을 찾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고민할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1974년 도입된 에프터스쿨을 통해서다.

안드레아는 “다음 주에는 코펜하겐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시티 소속의 덴마크 선수 미켈 비쇼프를 만나 인터뷰한 뒤 학교 신문에 기사를 쓸 예정”이라며 “에프터스쿨에서 소극적인 성격도 활발하게 변했다”고 환하게 웃었다.

1년 동안 인생 계획 세우기

덴마크에서는 우리나라처럼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해 불행해지는 학벌사회의 병폐는 없다. 적성에 따라 진로를 선택하기 때문에 대학 진학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다. 대학 등록금이 무료지만 진학률은 40%에 그친다. 지난달 23일 코펜하겐의 덴마크 교육부에서 만난 이안 스코스키(54) 수석 컨설턴트는 “덴마크가 매년 유엔의 행복지수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자신의 적성을 찾게 하는 교육에 있다”며 “스스로 행복을 찾게 하는 덴마크 교육에 학벌로 인한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덴마크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덴마크 학생의 약 30%인 2만8,500여명이 전국 250개의 에프터스쿨에서 생활했다. 사립이지만 정부가 학비의 75%를 지원하며 학생들은 기숙사비와 식비만 부담한다. 목공, 건축, 축구, 연극 등 학교마다 전공 분야가 달라 학생들은 관심사에 따라 학교를 선택한다. 학생수는 평균 100~150명. 안드레아가 재학중인 아우레 에프터스쿨은 덴마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유명한 학교로 학생수는 500명에 달한다. 스포츠와 공연예술이 특화됐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막연한 흥미를 구체적인 꿈으로 바꿔나간다. 코펜하겐에서 온 재스민 에이체(16)양의 특기는 색소폰. 성적 경쟁이 치열한 국제중학교(IPC)를 다녔던 그는 “음악을 좋아했지만 성적도 좋아 무엇을 선택할 지 갈등이 컸다. 얼마 전 오덴세의 한 초등학교에서 연주를 했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며 춤추는 것을 보고 확신을 얻었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아우레 에프터스쿨은 1년에 네 차례 일주일 동안 ‘인생 계획 세우기’ 시간을 갖는다. 학생들은 서른살 때 무엇을 하고 싶은 지, 어떻게 이룰 수 있는 지 구제적으로 설계한다. 5명의 전문 상담 교사가 학생들을 돕는다. 이 학교의 울릭 브래드슨 교장은 “덴마크 학부모들도 자녀들의 에프터스쿨 입학을 반긴다. 우리 학교는 1년 전에 미리 신청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자신감과 민주주의 정신 배양

익스트림 스포츠 전공인 엠마 로젠버그(16) 양은 처음 산악자전거를 탈 때의 기억을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200m 높이 언덕에서 산악 자전거를 탈 때는 ‘내가 정말 이걸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몇몇 친구들이 먼저 내려가길래 엉겁결에 따라 갔는데 너무 신이 났다. 지금은 반 친구 누구보다 빠르게 탈 수 있다.”

브래드슨 교장은 “도전정신은 말만으로 길러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자연스럽게 생긴다. 에프터스쿨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아우레 에프터스쿨은 케냐의 사립고교와 자매결연을 맺어 국제적인 시각도 길러준다. 올해는 케냐의 고교생 20명이 방문해 ‘케냐의 민주주의’를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다. 브래드슨 교장은 “부유하게 성장한 덴마크 청소년들은 자칫 ‘남들보다 낫다’는 오만함에 빠질 수 있다. 케냐 학생들이 그들의 꿈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설명할 때 덴마크 학생들은 다른 국가에 대한 이해와 민주주의의 중요성, 역사에 대한 겸손함을 배운다”고 말했다.

"교육 통해 원하는 삶 살아야"

에프터스쿨은 ‘덴마크 교육의 아버지’로 꼽히는 목사이자 사상가인 프레드릭 그룬투비의 가르침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모든 사람은 독특한 특성을 가진 존재이며 교육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1844년 그룬투비는 덴마크 서부 뢰딩 지역에 에프터스쿨의 전신인 시민대학(포크하이스쿨)을 세우고 민주주의와 정치ㆍ철학 등을 가르쳤다. 현재 250개의 에프터스쿨과 180개의 시민대학이 그의 가르침을 실현하고 있다.

덴마크 교육부는 과도한 경쟁을 막기 위해 7학년(중2)까지 시험을 금지한다. 고교 입학 전 9년 동안 한 명의 담임이 학생을 지속적으로 담당해 개성과 특성에 따른 진로지도를 하고 있다.

덴마크 교육 전문가들은 이 같은 교육 제도가 덴마크 사회에 역동성을 불어 넣는다고 말했다. 덴마크 교육부의 스코스키 수석 컨설턴트는 “덴마크에는 삼성이나 현대 같은 거대 기업은 없지만 뱅앤울룹슨(오디오), 레고, 로열코펜하겐(도자기), 베스타스(풍력발전) 등 창조적 강소 기업이 많다”며 “원하는 진로를 선택한 학생들이 도전정신과 창의력을 발휘한 결과”라고 말했다.

오덴세ㆍ코펜하겐(덴마크)=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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