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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편을 드세요

입력
2014.12.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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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는 보통 선장에 비유된다. 항구에 무사히 정박할 때까지 제대로 단도리를 잘 해 모두가 무사히 항해를 마칠 수 있게 잘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 그렇군 하고 말겠지만 여기에는 대단한 전제가 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배에서 그 누구도 내릴 수 없다는 것. 밉던 곱던 한 배를 타면 어쩔 수 없다. 이상한 논리로 반박하지 않는다면 모두는 사이 좋게 그 배와 함께 고락을 같이해야 한다. 도저히 고락을 같이 하지 못하겠다면? 그래도 선택은 없다.

연출을 할 때 불만과 불편이 어찌 없으랴. 연출과 배우의 불화뿐 아니라 배우끼리 혹은 스태프끼리 혹은 배우와 스태프끼리도 그런다. 분장실에서 잘못 말은 컬 때문에, 입어야 할 의상이 원하는 스타일의 바지통이 아닐 때, 상대역이 사이(Pause)를 너무 많이 잡아서 견딜 수 없다며 고성이 오가고, 작품의 해석차이로, 조명밝기로도 싸운다. 대본으로 싸우기는 그야말로 부지기수다. 자연히 술자리도 많다. 하네 못하네, 죽이네 살리네. 병원 응급실도 많이 가 봤다. 물론 다 연출이 못난 탓이다. 그래도 공연은 올라갔다.

배는 항구에 닿았다. 그러고 나면 모두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리운 좋은 멤버다. 그 배의 항해는 한번 뿐이었잖은가. 그 뱃길하며 당시의 풍광, 다퉜던 에피소드는 추억이 되어 가물거린다.

그래서 말할 수 있다. 한 편을 타는 순간 이미 같은 편이라고. 비행기 편(便), 배편 할 때 그 ‘편’자처럼 같은 편할 때도 그 편자다. 같은 편이 되고 나면 굳건한 동지애가 생겨나서 없던 에너지가 넘친다. 같은 편 속에서의 희로애락을 통해 안정감과 더불어 희생, 봉사정신도 생겨난다. 행복감도 배가된다. 어찌 나만 옳고 잘할 수 있는가. 그래서 같은 편이 같은 편을 비방하는 일은 할 짓이 아니다. 해서는 안 된다. 못하게 하고 나 역시 하지 않는다. 좋은 연극은 같은 편이 똘똘 뭉쳤을 때라야 가능하다.

기사를 봤다. 한 비행기에서 사무장이 기내서비스 문제로 징계차원에서 항공사 임원에 의해 쫓겨났다는. 그러기 위해서 비행기도 후진했다는. 바깥사람들은 정말 대단하게들 사는구나. 견과류 하나 때문에 비행기마저 돌릴 수 있는 논리와 추진력에 허~ 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또 봤다. 해당항공사의 사과문. 그러면 그렇지~ 기분이 풀려서 읽어봤다. 내용인즉슨 해당 사무장이 접시를 안 챙겨서 견과류를 냈고 매뉴얼도 못 찾고 변명으로 일관했기에 서비스를 관장하는 임원으로서 지적하고 교육차원에서 하기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보자마자 기분이 되게 나빠졌다. 대충 넘어가지질 않았다. 한참 잘못됐다. 항공편에 같은 편은 없었다. 같은 편이 좋은 편이라면 남의 편도 존중하기 마련이다. 나는 사과문에서 임원이 사무장에게 같은 편으로서 대하지 않았던 문제도 포함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랬다면 우리는 좋은 기업문화를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사무장은 완전히 버려졌다. 동종업계가 아니더라도 사무장 같은 입장에 처한 사람들이 인격에 얼마나 큰 상처를 받겠는가.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사무장이나 임원이나 같은 편으로 밖에 안 보인다. 불문가지. 임원은 사후약방이라도 사무장을 감싸는 게 무조건 맞았다. 한 편이니까. 극단적인 말이지만 사무장의 잘못이 그렇게 컸다면 그것을 총괄하는 임원도 당연히 같이 내렸어야 옳다. 같은 편의 도리 아니겠나. 어찌 관리감독만 능사겠나. 권한만큼 책임도 따를 것이 아닌가.

최고의 서비스를 위해 아무 때고 일벌백계하는 회사, 아이구야 공포스럽다. 상을 주고 칭찬을 해서 선의의 경쟁으로 서비스 자체를 즐기게 해야지 그토록 혹독하게 단속을 한단 말인가. 그것이 과연 진짜 서비스로 승객에게 돌아가겠나.

물론이다. 같은 편으로 잘 지내는 일, 만만치 않다. 같은 편의 좋은 장점만큼 화를 다스려야 할 일도 매일 숱하게 넘쳐난다. 그래도 같은 편은 같은 편이다. 편 안에서 얼마든지 풀 수 있고 풀어야 맞다. 그게 편의 운명이다. 편들기가 남 탓 보다는 훨씬 볼만하다. 같은 편을 미국 공항에 싸늘히 남겨두고 떠나신 그 대단한 분의 퍼스트클래스 비행편, 과연 평안했을까.

고선웅 연극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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