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삶ㆍ사건서 디테일 찾으려 노력
대본ㆍ시간에 쫓겨 본능적으로 연기
단 한 장면을 출연하더라도 그 배우는 작품의 주인공이죠

“악역인 듯 악역 아닌 악역 같은.”
최민수(52)는 유행가 가사처럼 자신의 역할을 센스 있게 표현할 줄 하는 배우다. 비굴할 정도로 권력에 굽히다가도 후배 검사들을 다독이는 장면을 보면 ‘진짜 모습이 무엇일까’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최민수는 검사들의 활약을 그린 MBC 월화극 ‘오만과 편견’에서 카리스마 있는 인천지검 부장검사 문희만을 연기한다. 귀 뒤로 넘긴 곱슬머리에 차가운 금테 안경, 거기에 조끼까지 걸친 정장 차림의 최민수에게서는 진짜 검사 같은 느낌이 난다.
9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만난 최민수는 “’오만과 편견’은 연기하는 우리도, 보는 시청자도 어려운 작품이라 극적 흐름이나 오락성을 찾기는 힘들 듯하다”면서도 “검사들의 소소한 삶의 모습, 사건과 사람의 관계 등 검사의 일상에서 디테일을 찾으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드라마 촬영에서 출연자가 디테일을 찾고 캐릭터를 분석할 시간은 대체로 충분하지 않다. ‘오만과 편견’은 방영 전 4부까지 촬영을 마쳤지만 지금은 ‘생방송 드라마’라고 할 정도로 대본과 시간에 쫓긴다.
“실시간 드라마처럼 찍고 있지만 오히려 잘 됐다고 봅니다. 후배들에게도 ‘실제 검사처럼 즉흥적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본능적으로 연기하라’고 조언하죠. 대본이 미리 나온다면 캐릭터나 장면을 분석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게 안되거든요. 그래서 대본이 나오면 사건에 직면하는 실제 검사처럼 행동하라고 하지요.”
그래서 일까.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도 “인천지검 민생안전팀이 중간 브리핑을 하는 것으로 보아달라”고 말했다. 한 달 전 제작 발표회에서 “검사에 빙의됐다”고 한 최민수는 이 자리에서 “한 화가가 그림을 그렸는데 사람들이 저 그림은 끝내준다고 했을 때 그 화가가 ‘나, 이 그림 그리는데 53년 걸렸어’하는 것과 같다”고 ‘빙의 연기’에 대해 설명했다. 연기자는 한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그만큼의 열정을 쏟아 붓고 대중으로부터 인정을 받았을 때 보람을 느낀다는 뜻일 게다.
요즘은 연기파 중견 배우가 젊은 스타에게 밀려 그들의 서브(보조) 역할이 되는 일이 빈번하다. 연기 경력이 30년을 넘어가는 최민수는 그러나 “단 한 장면이라도 출연한다면 그 배우 역시 그 작품의 주인공”이라며 “나이를 먹는 건 또 다른 도전이면서 나름의 패기”라고 말했다.
지상파 3사의 월화극 중 10% 내외의 시청률로 1위를 지키고 있는 ‘오만과 편견’이지만 같은 시간대 15%에 가까운 시청률을 내는 KBS 1TV ‘가요무대’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최민수는 “처음에 ‘가요무대’와 시청률을 비교할 때는 좀 우스웠다”며 “‘가요무대’는 사람들이 믿고 보기 때문에 사랑을 받는 것이며 한국 드라마도 기교나 테크닉이 아닌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걸 ‘가요무대’를 보며 느꼈다”고 털어 놓았다.
검사들의 행태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진정성 있는 드라마가 되기 위해선 숙제가 많을 듯했다. “배우도 정치 상황이나 정치 관련 용어는 다 알고 있어요. 그저 연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MBC에 외압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세태를 드러내는 연기도 해볼 만 하다고 봅니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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